논설실장

여야 3당 대표들이 엊그제 모처럼 청와대에 모여 만찬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것까지는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3당 대표들이 청와대 만찬 후 강남의 노른자위로 불리는 서초구의 최고급 룸살롱에서 폭탄주로 걸쭉한 뒤풀이 주연을 가져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너와 나의 고향'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목포의 눈물'을,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차례로 불렀다고 한다. 상대측 정당의 지지 지역을 겨냥한 노래로 화답을 한 셈이다.

"거기 가서 술 마신 정치인들은 다 죽어야 한다"는 한 네티즌의 거친 표현에는 우리 정치인에 대한 불신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룸살롱은 전직 대통령들의 아들들이 측근이나 기업가들과 자주 어울렸던 은밀한 곳으로 뉴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황태자 클럽'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강남에서 가장 비싼 업소로 알려진 이곳에서 3당 대표들이 낭만이 사라진 정치를 아쉬워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풍류와 낭만을 정치에서 찾을 만큼 한가로운 때가 아니다. 일본의 요정정치를 되살리자는 것인가. 장막 뒤에서 뒷거래와 흥정으로 정치판을 오염시킨 장본인들이 누구인가. 공무원들에겐 1인당 3만원 이상의 접대를 금지하면서도 정치권은 수백만원씩 펑펑 쓰는 나라, 그게 한국이다. 그래도 되는지 공무원들의 푸념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명분으로만 보면 '정치의 낭만'을 찾는 것으로 포장돼 있지만, 정치인들의 호화판 놀음에 서민들의 분노만 촉발시키고 말았다.

각 이익단체들의 잇단 요구와 반발로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푸념이 나올 만큼 총체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대통령에겐 말조심을 하도록 훈수하고는 막상 자신들은 한발 앞서서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 여야 정치지도자의 이중성을 확인하게 돼 씁쓸하다.

"사이비 정치꾼들아 지금이 술 파티 할 때냐"는 네티즌의 절규가 아니더라도 우리 정치는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둘러싼 이견으로 분당 위기에 몰려 있고, 제1당인 한나라당 역시 다음달 26일 당대표 선출과 맞물려 당내 각 주자들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민생문제는 그야말로 뒷전에 밀려나 있다. 그렇다고 북핵문제가 잘 풀려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사정도 최악의 침체국면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정치란 말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늘날의 '정치공황' 상태는 여야 정치권의 리더십이 부족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초 지난 대선 때 등장한 '변화와 개혁'이라는 화두가 좀체 먹혀들지가 않고 있다. 3김 퇴장에 따른 일시적인 힘의 공백기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지루하기만 하다. 정당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여론을 조직화하면서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도 엿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기 위한 확고한 리더십을 먼저 갖추는 게 급선무다.

정치권부터 변화의 몸짓을 보여 줘야 한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의 신당문제나 한나라당의 당 대표를 둘러싼 구도에 대해 정치개혁을 위한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당권 투쟁으로 규정해 버리는 국민의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정치인,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불안감만을 조성해 준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3당 대표들의 호화 술판 사건은 또 다른 하나의 교훈으로 챙겨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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