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과장

뇌출혈로 입원한 70세 노인이 있었다. 복용 중인 약을 보호자에게 물어봤는데 최근 동네의원에서 중풍예방주사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중풍예방이 가능한 주사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서 그 주사를 놓아준 의원에게 성분을 알아보니 헤파린이었다.

헤파린이란 거머리가 흡혈할 때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분비하는 물질이다. 혈액이 굳어 혈관을 막는 뇌졸중(중풍)과 심근경색의 치료제이다. 투약방법 또한 혈관으로 직접 24시간 동안 일정한 용량이 들어가야 하며 뇌출혈, 장출혈 같은 부작용이 많아 주의가 필요한 약이다.

효과도 없는 짓을 왜 하는지 물어보자, 그 원장은 "주변 의원과 한의원들이 하는데 자기만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니 더욱 황당했다. 헤파린보다 훨씬 위험한 약제인 유로키나제를 주사하는 의원도 있었다. 또한 레이저가 달린 바늘을 혈관에 꽂고 있으면 피가 맑아진다는 황당한 중국산 기계를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아스피린 같은 값싸고 부작용 적고 중풍예방효과가 확실히 입증된 약을 제쳐 두고 엉뚱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위의 내용을 지역신문에 기고한 후 일부의 항의전화에 시달렸지만 저런 시술이 퇴출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요즘 번듯한 고층건물에 입주한 의원·한의원들에서 더욱 경쟁적으로 시술하는 것을 듣고 다시 펜을 들었다.

일반 국민만이 아니라 일부 의사조차 당장 큰 부작용이 없는 의료행위는 객관적 치료효과의 검증이 없어도 괜찮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당국의 무책임한 방관이 이러한 지경까지 몰고 왔다. 그러다보니 의료인마다 고서의 어떤 내용을 보고 착안, 배합해서 만든 약인데 자기 경험에 키가 크더라는 무속인 수준의 주장을 하며 키 크는 약이라고 버젓이 광고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이다.

객관적 검증 없는 정체불명의 '머리 좋아지는 약', '아들 낳는 약', '살빠지는 약'을 팔고 사는 여기는 아직도 18세기이던가.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여러 방법으로 지속적 관리감독되고 있는 의사들조차 이런 상황인데, 전통의 탈을 쓴 유사의료업자들은 어떻게 환자들을 현혹하고 이윤을 낼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정부는 유사의료행위 양성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이런 일을 통해 배우기를 바란다.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술 및 투약은 비윤리적인 무허가 생체실험일 뿐이다. 우선 의료인들은 자정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환자들도 소문에 휩쓸려 무분별한 치료를 받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