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외암 민속마을'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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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과 어버이날도 지나고 이제 가정의 달 5월도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바쁜 일정으로 혹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나들이 한번 못하고 가정의 달을 흘려보내고 있다면 이번주라도 시간을 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아산에 있는 외암 민속마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외암 민속마을은 아담한 크기로 산책을 하면서 마을을 둘러볼 수 있고, 잘 가꿔진 조경과 맑고 깨끗한 천은 업무 등으로 쌓인 스트레스도 날려 버린다.

특히 아파트 단지 등이 밀집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어린 자녀들에겐 우리의 전통문물에 대한 견문도 넓힐 수 있고, 교육적으로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과 마을 내부의 초가집을 비롯해 전통가옥, 돌담길, 방아 등 마을 곳곳에서 우리네 옛 생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5.3㎞에 이르는 돌담길을 걸으면 마치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연인 및 가족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새록새록 정도 깊어짐을 느끼게 된다.

또 마을 참판댁에서는 연잎으로 만든 전통 토속주인 연엽주를 직접 생산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외암 마을은 가족 여행지는 물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외암마을의 유래와 형성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은 역말과 관련 있다는 것이 문화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옛날 일정한 거리마다 역을 두었는데 이곳에 마을이 생기면서 흔히 이런 마을을 '역말'이라 불렀다.

이곳 역말에는 조선 초기부터 이미 시흥역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이라고 불렀는데 이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 외암은 500여년 전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해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예안 이씨 족보와 외암 이간 선생의 '외암기'에 따르면 원래 외암마을의 주인은 평택 진씨였다.

현재 외암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쯤이 예안 이씨인데 외암마을에 들어온 사람은 아들 없이 딸만 셋이었던 평택 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인 이사종이다.

진한평은 꽤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으며 장녀와 결혼한 이사종은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외암마을에 눌러 살게 된 것이다.

▲마을의 문화유산

기와집, 초가집 등 중요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외암마을는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됐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던 집인 '영암군수댁'이라고도 불리는 건재고택은 이상익의 아들인 이욱렬(1874∼1960)이 완성한 것이다.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에 있는 넓은 사랑마당은 소나무와 향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꾸며져 있다.

또 담장 밑에 설치된 입수구(入水口)에서부터 좁다란 수로를 타고 정원으로 들어오는 물길이 여유 있게 곡선을 그린 뒤 연못을 이루는 모습은 저절로 세상 시름을 잊게 만든다.

송화군수를 했던 이장현(1779∼1841)으로 인해 송화댁이란 택호가 붙여진 이곳의 사랑마당은 다른 집들보다 넓은 편이다.

이 사랑마당의 정원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지 않아 자연스러움이 연출되며 마을 윗쪽에서 흘러온 물길과 주변의 돌들은 마치 산속의 계곡을 연상케 한다.

이사종의 13세손인 이용구가 경학으로 천거돼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 해서 붙여진 '교수댁'은 원래 사랑채, 안채, 행랑채, 별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안채와 행랑채, 사당만 남아 있다.

하지만 가택 내 정원에는 연못과 정원수들이 조화를 이뤄 다른 가옥 내 정원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운치를 간직하고 있다.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1865∼1950)이 살던 집인 '참판댁'은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아 지은 집이다.

이곳은 연잎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전통 토속주인 연엽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병사댁·신창댁, 참봉댁, 열녀 안동 권씨 정려, 외암정사와 강당사 등 우리네 옛모습을 간직한 가옥들이 많아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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