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몰렸다. 결국 당의 간판을 내릴 공산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여당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돌파구가 엿보이지 않는 탓이다. 그 속내를 곰곰이 뜯어보면 당내 다양한 그룹의 당권 장악과 연계돼 덧셈과 뺄셈식 정치공학적인 발상이 판을 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판도가 확연하게 드러나겠지만, 어찌됐든 대통령을 배출시킨 집권 여당이 차기정권 창출을 염두에 두고 이합집산으로 치닫는 형국이 못내 씁쓰레 하다.

여권의 위기, 탈출구는?

여당 대선 주자군에 포함된 천정배 의원, 그리고 이계안, 임종인, 염동연 의원은 이미 탈당했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정책위의장도 탈당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20∼30명 규모의 동조세력을 규합, 대규모 탈당으로 이어질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예고된 엑소더스는 머지않아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급기야는 지난 1일 정덕구 비례대표 의원이 "현재의 열린우리당 상황을 지켜보며 더 이상 무력감 속에서 계속 의원직에 연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깊이 고뇌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당이 사분오열되는 것은 지지율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이는 민생(실패) 때문이다. 누군가는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그의 사퇴의 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여당 사수파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싸늘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퇴를 보는 국민의 시각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오늘날 이토록 여당의 풍비박산을 자초한 요인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기실 그 근저에는 민심이야 어찌됐든 여당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전략이 엄연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현실을 난세(亂世)라고 진단한 것은 맞다. 돌이켜보면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타고 국회의석 과반을 돌파하면서 정치 판도를 선점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선용할 줄은 몰랐다. 대국민적인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정치적인 책임은 두고두고? 천추의 한으로 기록될 만하다.

잇따른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지지율 10%내외를 맴돈다. 정당이 존립목적인 권력 쟁취를 달성하기 위한 정체성 확보에 고민하는 모습은 탓할 게 못된다. 다만 이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오늘날 여권에 주어진 숙제다. 역사상 난세에서 영웅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역대 영웅호걸들처럼 천하를 손안에 넣으려면 낯짝이 두껍고(面厚) 심보는 시꺼먼(心黑) 리더십, 즉 후흑학(厚黑學)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그대로 닮을 수는 없다. 이미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중국 청나라 말기 리쭝우(李宗吾)의 이 이론은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비록 이 이론이 20세기 초 동북아 열강들의 세력 판도를 순항하기 위한 동양적 통치철학으로 나오긴 했으나 설익은 후흑론은 되레 당사자를 멍들게 하고 공리(公利)를 외면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도 아울러 경고해주고 있다.

국민만 고달프다

당장 5일부터 30일간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경제관련 법안을 비롯해 민생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여권이 당내문제로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이를 책임지고 이끌만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여당의 미래는 없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9일 청와대 회동이 남아 있다지만 여야가 당리당략에 얽매여 정쟁에 휘말리거나 국정 현안을 졸속처리할 경우 그 폐해는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문패만 갈아 달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시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국민들의 처지만 난감해졌다. 그런 가운데 국민들이 어떤 인물을 차기 대통령을 선택할 것인가. 민심은 냉엄하게 요동을 치고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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