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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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酒池肉林(10)

임금의 신변잡사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비밀을 지키는 것이 내시들인데 그들에게 신언패를 차고 다니게 하였으니 자기가 궁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백성들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 왕의 배짱이었다. 그런 배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유부녀를, 그것도 힘없는 백성의 아내가 아닌 재상의 부인과 종실의 부인을 궁중으로 유인하여 농락할 수 있을 것인가.

"복두쟁이가 제풀에 기가 질려서 죽을 만도 하구나. 임금의 비밀을 폭로하고도 살기를 바라는 자가 있을까 보냐. 신라 역사에 정말 그런 이야기가 있는지 내 한번 알아보리라."

"전하, 밤이 깊었사오니 촛불을 물리고 그만 침수(寢睡) 드시옵고 신첩에게 분부하실 일은 내일 말씀하셔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녹수가 머리맡의 촛대에서 휘황하게 타고 있는 등촉을 쳐다보며 왕의 품에서 빠져 나가려고 몸을 움직였다.

"아니다. 가만 좀 있거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하지 않느냐. 말이 난 김에 결정을 짓자꾸나."

왕은 녹수의 몸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전하, 소문나기 쉬운 것이 남녀간의 염사(艶事)라고 하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신 후에 분부하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바람을 넣은 게 누군데 이제 와서 꽁무니를 빼려고 하는 게냐? 온실성(溫室省)의 나무도 말하지 않는 자가 있는데, 어느 누가 감히 궁중의 규방비사(閨房秘事)를 누설하고 소문을 내겠는냐. 너는 그런 염려 말고 내 청만 들어주면 되는 것이야."

"온실성의 비밀도 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옵니까."

"옛날 한(漢)나라 때 무제(武帝)가 온실전(溫室殿)이라는 궁전을 지었는데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하였다는구나 그 온실전에 수목이 많았는데 어떤 사람이 공광(孔光)이라는 대신에게 묻기를 '온실성 안이 모두 수림인데 무슨 나무들인가?' 하고 물으니 공광이 입을 다물고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금(古今)에 다시 없는 미담으로 전하는 고사란다. 임금을 섬기는 신하의 도리가 그러해야 하느니라."

"공광이라는 분은 대신이었으니까 사리를 알아서 그랬겠지만 분별없는 것들이야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녹수야, 네가 마음이 변한 게냐, 진정으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냐?"

왕은 고개를 뒤로 물리고 의심스런 듯 녹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녹수는 속이 뜨끔하였다.

"전하, 신첩의 진심을 오해 마시오소서."

녹수는 자기의 후환을 걱정하다가 자칫하면 왕의 총애를 잃을까 가슴이 서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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