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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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酒池肉林(9)

"전하께서는 신언패(愼言牌)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으시는 모양이오나 사람의 입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가 보옵니다. 옛날 신라 때 두 귀가 당나귀같이 크신 임금님이 계셨다고 하옵니다."

"에이, 시작부터 엉터리없는 이야기로구나. 하하하."

"역사책에도 거짓말이 전하옵니까? 언문도 깨치지 못한 신첩이 언제 역사책을 한 줄 이라도 읽었겠사옵니까. 들은 풍월이자만 사실일 것이라고 믿어서 들려 드리고 싶은 것이옵니다."

녹수는 그 이야기의 출전(出典)이 고려 때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왕도 정사(正史)가 아닌 '삼국유사'는 배운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좋다. 이야기해 봐라."

"그 임금님은 항상 귀밑까지 내려오는 복두(僕頭)를 쓰고 계셨기 때문에 임금님에게 복두를 맞추어 드리는 복두쟁이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임금님의 비밀을 몰랐었다고 하옵니다. 임금님은 복두쟁이에게 '너 이놈, 밖에 나가서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만 하더라고 소문을 내는 날에는 네 모가지가 달아날 줄 알아라' 하고 하냥다짐을 두셨지만 복두쟁이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려니 병이 되고 말았다고 하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두쟁이는 도림사(道林寺)라는 절로 놀러 갔다가 혼자 대밭으로 들어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해 버렸더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같이 속이 후련해졌는데 갑자기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노래를 부르듯 하는 소리가 나서 온 서라벌 천지에 짜하니 소문이 퍼지니 복두쟁이가 기가 질려서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고 근심하다 죽어 버리고, 소문을 듣고 진노하신 임금님께서는 도림사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으라고 명령하셨다고 하옵니다. 호호호…."

"하하하하…. 예끼, 허무맹랑한 고담 아니냐?"

녹수 자신도 신라 경문왕(景文王)의 설화라는 것은 모르면서 들은 풍월로 왕을 한바탕 웃겼다.

녹수는 궁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이미 민심이 왕에게서 이반(離反)하고 흉흉하다는 외문(外聞)을 듣고 녹수 제 자신이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왕을 오도(誤導)한 것이 제게 후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녀자의 소견으로 뒤늦게 왕의 바람기를 잠재워 보려고 한번 머리를 써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왕은 신언패라는 것이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줄로 오산하고 유부녀를 궁중으로 유인하여 농락한 후에 외문(外聞)이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녹수의 이야기 속의 암시를 자각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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