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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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酒池肉林(6)

승지들이 승정원에 모여 의논하였다.

국상이 나서 대행대비의 빈소가 아직 대궐 안에 있는데 왕이 조회받을 때 풍악을 쓰는 것은 전고(前古)에 없던 새로운 전례를 만드는 것이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비록 왕이 역월지제를 원용하여 이미 길복으로 갈아입었다 하더라도 조회 때 풍악을 쓰는 것은 어렵다는 뜻을 모아 입직승지로 하여금 아뢰게 하였다.

"전하, 신등이 의논한 바를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이미 길복으로 갈아입으셨사오니 모든 길례(吉禮)를 행하실 수는 있사오나 다만 대행대비께서 아직 빈소에 계시오니 풍악을 쓰시는 것은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왕이 강행하겠다고 고집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승지들의 의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는 완곡한 반대 의사였다.

왕이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

왕은 정부와 육조, 한성부와 대간을 불러 의논하여 아뢰라고 명령하였다.

승지들은 그제야 왕이 풍악을 쓰기로 작심을 하고 다만 요식행위로 자기들에게 찬반을 물은 것을 알고 아차 하였다.

왕은 정부와 육조 등의 대답도 듣기 전에 승정원에 다시 전지를 내렸다.

<전일에 상사(喪事) 제도를 의논할 때 경들이 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고, 지금 조회 때 풍악을 쓰는 일을 의논하면서도 의견이 편협하였다. 옛날 안순왕후(예종비 한씨)의 상제를 의논할 때 나의 뜻을 꺾은 정승들이 지금은 거의 모두 베임을 당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연소한 임금이 혼자서 연로한 대신들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 하여 그랬을 것이다.

대저 풍악이라는 것은 사람의 혈맥을 화창하게 하고 찌꺼기를 없애 화평한 기운을 기르는 것이므로 조정에서 들으려는 것은 돌이나 쇳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행대비의 빈궁(殯宮)이 아직 떠나지 않았더라도 임금이 이미 길복으로 바꿔 입었으니 자연 풍악을 써야 하는 것인데 경들의 의논이 정말 편협하지 않은가. 이런 일을 두고 불초한 자는 내가 반드시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할 것이지만 어찌 감히 입 밖에 내어 말할 것이랴!>

결론은 내가 설사 국상 중에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더라도 누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시비할 자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왕이 조회 때 풍악을 쓰려고 배수진을 치는 것은 상중의 금욕 생활이 지겨워 차차 연락(宴樂)을 베풀고 질탕하게 놀려고 하는 속셈에서였다.어느 날 밤, 왕은 선통없이 애첩 녹수의 처소를 찾았다.녹수는 시위 소리를 듣고 곤두박질치듯 뜰 아래로 달려 내려와 왕을 반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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