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정치가 온통 한국사회를 집어 삼킬 것 같은 포악질을 해댈수록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곤궁해질 따름이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군상(群像)이 주변에 넘쳐난다. 희망을 그릴 여유조차 없다. 복잡다기한 현실에 대한 적응력 수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단 정치권뿐이겠는가. 끊임없는 증오와 갈등으로 채워진 넋두리는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새가슴만큼이나 협량(狹量)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는 눈길이 매섭기만 하다. 그럴수록 세밑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간 최저치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8.4%보다 밑도는 수치다.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지지도 역시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어떤 지표라도 밑바닥을 치면 일단 상승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기대마저 접어야 하나. 집권층으로선 억울해 하거나 분통만을 터뜨릴 일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불신받는 정권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 자신도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편가르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오'의 측면이 있었다면서 "제 정치적 역량의 부족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해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호주 시드니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자책과 회한이 서린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관해 고심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 점 국민들한테 대단히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제 정치적 역량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에 그런 고뇌가 묻어나오는 듯하다.

10명 중 9명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그렇다고 집권여당이나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국정 중심축에 서서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기국회가 3000여 건에 이르는 법안 처리를 외면했고,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인 12월 2일을 지키지도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식물국회를 자초한 결과다. 그러고도 또 다시 11일부터 닷새간 임시국회에서 이를 처리하자고 한다. 사학법 재개정 여부를 놓고 여야 정당간에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이번 임시국회 또한 정쟁국회로 지탄받을 소지가 크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온통 내년 대선 일정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구도를 구축하려는 데 올인하고 있다. 여당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계파 간 갈등에 휩싸여 있고, 한나라당도 3명의 차기 대권주자를 향해 줄서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판을 흔들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려는 구태가 여전하다. 민생문제가 어디에 있건 정치공학 차원에서 지역적·이념적인 표를 계산하는 인식이 압도한다. 그들에게 정치적인 신념이나 위민정치 따위는 사치스런 것이다.

대통령 임기 말 1년을 앞두고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 자신마저 임기 단축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 적절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대통령 개인의 고뇌를 헤아릴 수가 있다. 증오의 정치에 주술(呪術)이 걸린 듯 청와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세상이다. 임기 말에 편승한 정치권의 움직임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차기 대통령의 덕목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해보면서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대통령 해먹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를 지레 짐작할 수 있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는 더 이상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는 탓이다. 이래저래 국민만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논설실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