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장사가 안 된다고 야단이다. 제법 큰 사업을 벌여 놓고 짭짤하게 경영하던 중견 기업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렇듯 일선 기업주들이 한결같이 우리 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경제와 경영이 심각한 지경에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한가롭게 올 경제 성장이 4%가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닐 듯싶다.

경제 성장률과 경기의 체감온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보다 절박한 것은 실물경제의 현실과 국민의 정서를 사실대로 파악해서 이에 대한 단기 처방과 장기 대책을 신중하게 다시 세워 국민들에게 우리 나라 경제 전망에 대한 자신감을 새롭게 심어 주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더불어 사회적 임상실험도 끝나지 않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인사와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충격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여 주는 처방이 요구된다 하겠다.

회상해 보면 김영삼 정부 때도 개혁이랍시고 예금실명제를 만들었으며 김대중 정권은 의료보험제도에 있어서 의약 분업을 강행했다. 두 가지 모두 그 당위성에서 개혁적인 과제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결국 실패한 개혁으로 국민들의 원성만 샀다. 신중하지 못한 당시 정권 추종 세력들의 교만이 재촉한 무모한 결과였음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경제의 버팀목은 산업 사회를 이끌어 온 소유경영자들의 강한 기업의욕에서 비롯되었다. 더 빨리, 더 싸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그들은 강요된 근로문화를 앞세워 근로자들의 꼼꼼한 손놀림과 매운 눈썰미로 한국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여기까지는 성공적으로 잘 왔다. 지금으로부터의 문명 변화를 어떻게 읽고 대처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토지와 노동 그리고 자본이 부의 원천이 아니라 지식과 창의력이 부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한국 기업조직의 모태는 가부장적 리더이다. 가능성 하나에 전부를 걸고 밀어붙이기식 경영 스타일만으로는 오늘날의 경영 수단인 창의력을 만들 수가 없다. 서양인들의 성공 모델인 합리주의적인 경영 질서와 규범을 깨뜨린 무모함과 함께 CEO들의 강력한 집념을 통하여 기업의 목적을 성취하던 능률 강조형 시절의 꿈을 씻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농경 사회의 생각으로 산업 사회를 살아가고 산업 사회의 가치관으로 지식, 정보 사회를 맞고자 하는 데서 여러 가지 한국적 병폐를 낳고 있다. 진정한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지나치게 확고한 소유경영체제, 대립형 노사 구조, 근로 이념과 경영 질서의 실종, 인재의 중요성 망각, 기업 내 부정과 부조리, 물량 위주의 성장 전략 등은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의 경영 패러다임과는 너무나 다른 가치관이기에 모두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요소들이다. 이것을 진단하여 한국의 기업병이라 한다. 이것을 치유하자는 데 개혁의 참뜻이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기업 성공 조건들은 더 이상 미래의 성공 조건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기법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바보는 결심만 하는 사람이다. 경영은 실사구시라 하지 않았던가? 기업과 정치는 똑같이 실사구시가 선행조건이다. 정치가 좋아지면 기업도 좋아지고 기업이 좋아지면 정치도 좋아진다는 상생의 원리대로 나라 정치를 이끈다면 그것이 한국 경제의 봄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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