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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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酒池肉林(4)

어전에 꿇어 엎드린 승지는 왕의 입에서 누구 누구를 무슨 죄로 어떻게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질까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왕은 기부안을 더 뒤적거리며 훑어보다가 추궁조로 물었다.

"나라에서 여악(女樂)을 설치한 이유가 무엇이오?"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승지는 자라목을 한 채로 왕의 표정을 얼른 살폈다.

왕은 또 노여움이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예, 신이 알기로는 대내(大內)의 진연 때와 외국 사신을 영접할 때와 명절에 경축하는 잔치에 불러다 가무음곡을 아뢰게 할 목적으로 여악을 설치한 줄로 아옵니다. 그런즉 관기는 공물(公物)이며 나라의 소유인 것이옵니다."

승지는 왕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간파한 것이었다.

"그렇소!"

왕은 그런 대답을 듣기 바랐던 듯이 즉시 맞장구를 쳤다.

"기생이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일 수 없는 것이오. 일개 별감(別監)이나 사령(使令)이나 나장(羅將) 따위가 기생을 데리고 사는 것도 좋지 않은 풍속인데 근자에는 나라의 종친과 조사(朝士)들까지 기생을 차지하여 사유물을 만들고 공공의 연회에 내보내지 않는 사례가 많으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하옵니다."

승지는 왕의 말이 타당하기도 하지만 설령 억지 논리일지라도 아니오라고 이의를 말할 수 없었다.

어찌 왕명을 출납(出納)하는 것이 임무인 승지뿐이겠는가.

살인마 같은 왕 앞에서는 대신이라고 소신 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윤필상을 비롯한 대신들이 국사범이 아니면서 왕의 사원(私怨)에 목이 잘리는 참형을 당하였고,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대신들도 부관참시로 시체의 목도 보전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쇄골표풍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시신을 가루내어 바람에 날려 버리는가 하면, 성종의 후궁이었던 정씨와 엄씨는 폐비 윤씨를 참소하였다는 죄로 왕이 친히 격살(擊殺)한 후 시체를 찢어 젓담그어 산야에 흩어 버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왕이 말을 계속하였다.

"예조와 장악원 등 해당 관사에서 의법(依法)하여, 관물인 기생을 사유화하여 공공의 연회에 내보내지 않는 종친과 조사들을 죄주기를 청하여야 마땅할 것인데 오히려 세력에 부동하여 방조(傍助)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나라에 기생을 두어 풍악을 익히게 하는 본의(本意)라 하겠소?"

"장악원 제조가 기부들을 단속하지 않고 문책하지 않은 죄가 있다 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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