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는 전직 대통령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난 26일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한 장의 영결식 사진은 아이러니한 우리의 정치 현실을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한 전직 대통령의 굳게 다문 입술을 보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흐르고 있는 침묵의 실체가 뭔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굴절된 민주화 과정에서 그들이 차지한 몫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침묵의 실체는 뭔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의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시해를 당한 사건은 이 땅에서 유신독재가 종언을 고한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김재규는 동향 선배이자 출세의 은인인 박 전 대통령을 아리따운 여성들이 지켜보는 만찬장에서 권총으로 살해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잘되면 충신이요, 못되면 역적이라고 했던가.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한국 정치의 지형 역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신군부는 12·12 군사쿠데타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 실권을 움켜쥔 후 8개월 만에 최 전 대통령도 권좌에서 몰아냈다. 권력이란 원래 나눠 가질 수 없는 속성을 지닌 탓이다. 당시 정 총장 체포 재가 과정과 5·18 사건에 대한 최 전 대통령의 역사적 책임론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신군부에 대한 숱한 의혹을 당시 대통령이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으니 그 공과는 역사 속에서나 내려질 판이다.

역사적인 진실을 무덤까지 갖고 사라진 최 전 대통령,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살아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최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되던 10월 26일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전국립묘지에 국민장으로 안장됐다. 역사라는 인연의 끈은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 그 심판이 내려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사임 후 25년간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도대체 뭔가.

최 전 대통령이 12·12 및 5·18특별수사와 관련, 강제구인을 당하고도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은 이유로 제시했던 항룡유회(亢龍有悔,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다는 뜻)라는 말에 그 의미가 축약돼 있는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은 주역에 나와 있는 항용의 지위에 있으므로 당시의 진상을 밝힐 수는 없다고 했지만 그 자체가 대통령직을 버린 배경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진실은 감출 수 없다

권력이라는 꿀맛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명에 사라진 상앙, 백기, 오기, 문종이 그랬다. 채택이 진(秦)나라 재상 범수에게 재상 자리를 내놓고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것을 설득한 논리와도 통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최 전 대통령이 비록 대통령직을 내놓고도 왕자교(王子喬), 적송자(赤松子)처럼 신선놀음을 하며 만인의 추앙을 받지는 못했지만, 당시 신군부에 의한 유·무형의 압박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도 정치군인들의 집권욕 전개과정은 숨겨둔 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게 당시 퇴임의 변이었다.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최 전 대통령이 길고도 긴 은둔생활 끝에 이승을 하직했지만 그래도 역사는 살아 숨 쉰다. 손바닥으로 역사를 가릴 수는 없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어떤 형태로든 국정 메모가 발견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어두운 과거를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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