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

▲ 정림사지 5층석탑 <우희철 기자>

'멀리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부소산 자락을 올라 영일루에서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고 달밝은 밤 낙화암에 앉아 한잔 술로 백마강에 흩뿌리어진 삼천궁녀의 설움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문화관광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부여는 백제 성왕 16년인 538년에 웅진성(공주)에서 천도해 의자왕 20년인 660년 나·당 연합군의 말발굽 아래 함락될 때까지 123년간 백제의 왕도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군청 앞에 우뚝 서 있는 계백장군상, 박물관 입구에 있는 대형 백제금동대향로의 자태는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를 소리없이 말해 준다.

<편집자 주>

부여의 진산(鎭山)인 부소산은 해발 106m의 나즈막한 구릉으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수호하던 최후의 보루, 부소산성이 2.2㎞에 걸쳐 축조돼 있다.

부소산성이 완성된 것은 성왕이 수도를 사비로 천도하던 무렵인 538년경으로 보이나 그보다 앞선 동성왕 때 이미 산봉우리에 산성을 쌓았고 후대에 무왕이 605년에 다시 고쳐 쌓았다.

성곽은 산정에 테뫼식(머리띠식)으로 산성을 쌓고 그 주위에 다시 포곡식(성의 내부에 낮은 분지가 있는 형식)으로 둘렀으며 흙과 돌을 섞은 토석혼축식으로 축조됐다.

낙화암엔 삼천궁녀 망국 恨 서려

부소산성에 들어서 오른쪽 길로 접어 들면 백제 말의 충신 3인방인 성충·흥수·계백의 위패를 봉안한 삼충사와 만나고 그곳을 지나 5분 남짓 걸어가면 영일루가 나온다.

동쪽 산봉우리에 자리한 영일루는 지난 64년 홍산에 있던 홍산문루를 옮겨다 놓은 것으로 아침 해를 맞는 곳(迎日)이란 이름 그대로 해뜨기를 보기에 안성맞춤이며 이곳에선 공주 계룡산 연천봉이 아득히 바라 보인다.

부소산 가장 높은 곳에 사자루가 있고 바로 아래쪽으로는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육모지붕의 백화정이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백마강 강바람에 땀을 식히다 보면 어느새 부소산 서북편에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낙화암에 이른다.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했던 역사 간직

백제가 무너지던 날,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런 삶을 이어갈 수 없다며 꽃잎처럼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여인들의 망국의 한이 서린 낙화암.

이곳 절벽이 붉은 빛을 띠는 것은 당시 백제 궁녀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백제 여인들의 혼을 달래며 낙화암의 육각정자 백화정에 앉아있노라면 백제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는 백마강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길손의 발길을 돌아설 줄 모르게 만든다.

고란약수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즐겨 마셔 어용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소산성 서쪽 백마강변에 있는 구드래 나루터는 백제시대의 관문으로 이곳을 통해 많은 문물이 일본에 전파됐다.

부소산을 오르다 만난 초로의 일본인 관광객들은 백제의 후예임을 확인하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백제인의 고귀한 예술정신을 승화시키기 위해 지난 96년 조성된 구드래 조각공원에는 자연과 예술, 과거와 현대가 조화된 예술작품들이 멋스럽게 자리해 찾는 이들의 심미안을 일깨워준다.

낙화암 절벽 아래쪽엔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에서 백마강 상류 쪽을 보면 작은 바위섬이 하나 떠 있는데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에서 백마를 미끼로 백제를 지키는 용을 낚았다 하여 조룡대라 불린다.

백제대교가 놓인 규암나루까지 가는 배를 타면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하는 유행가가 절로 나온다.

노을진 부소산에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피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빛은 서글픈 역사의 한 자락처럼 불어오는 겨울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우리를 백제의 숨결 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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