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반도엔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동시에 흐른다.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구촌의 수장'인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소식은 상서로운 기류다. 하지만 반 장관이 단독 후보로 지명되던 날 북한은 기어이 핵 실험을 하고야 말았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엔 그렇게 불연속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급기야는 유엔이 대북 제재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도 오늘날 국제사회에 각각 던져주는 메시지는 사뭇 판이하다는 데서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

한반도의 불연속선 기류

반 장관의 쾌거는 1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한국 외교의 승리다. 해방 이후 신생독립국, 한국의 혼란기만 해도 외국인의 눈길은 차갑기만 했었다. 영국 인류학자 오스굿 교수는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라는 저서에서 "한국 사람들은 곧장 그들의 욕망을 과시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열심히 일하거나 천재적 기질도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격"이라던 비아냥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다. 한국이 동족상잔의 폐허를 딛고 이젠 세계 10위권을 노리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도 달성했으니 세계가 감탄할 만하다. 유엔 16개국 참전으로 민주국가를 지켜냈던 우리들로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외무부의 요직을 두루 섭렵한 그의 인생 역정을 보면 일단 억세게 관운(官運)이 좋은 인물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작년 7월 홍석현 전 주미 대사가 현지 부임 이후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사를 비쳤을 때만 해도 한국으로서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만 알았다. 결국 그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의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이라는 과거사의 덫에 걸려 대사직마저도 내놓고 말았다. 반면 반 장관은 작년 9월 정부로부터 공식후보로 낙점받은 후에도 조용하고도 치밀한 외교 전략을 무기로 차기 총장을 거머쥐었다. 절묘한 '조화의 이치'라고나 할까. 모나지 않는 듯하면서도? '필연'이라는 기회를 이끌어 낸 그의 저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반 장관의 성공담이 세간의 화제라고 한다. 1962년 충주고 재학 시절 영어 웅변대회에서 입상해 미국을 방문,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접견하고 외교관의 꿈을 다졌다는 일화에서도 그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피그말리온이 사모하는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정성을 드렸더니 미의 여신이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의 아내로 맞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청소년들에게도 교훈적인 화두로 등장하면서 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비록 북핵 그늘에 가려져 있는 듯 같지만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지 불과 16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으로 우뚝 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두고두고 세계사에 남을 일이다. 유엔 총장은 미국 대통령 부럽지 않는 권위와 명예를 갖는다. 유엔 조직의 실질적 최고 관리자, 유엔 산하 조직의 상징적인 대표자로서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주요 사태를 안보리 의제로 채택하도록 보고하는 것을 비롯해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막강한 권한을 수행한다.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미국 및 강대국보다는 약소국과 제 3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환경과 전쟁, 기아와 종교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제 분쟁을 조정하고 치유해 나가는 데 전념해야 할 책무가 그에게 주어져 있다. 유엔 개혁안을 토대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긴요하다. 그간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의 불화도 정리해야 할 사안이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번영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행위다. 어제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안이 채택된 것은 예고된 수순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당시 불과 여섯 살이던 반 장관이 이제 유엔의 조직아래 어떻게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것인지.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역대 총장들처럼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수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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