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를 꼽으라면 오나라의 주유(周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나라와 촉나라 연합군 총사령관을 수행하면서 불리한 전세(戰勢)에도 불구하고 반간계(反間計)를 활용한 끝에 마침내 위나라의 80만 조조군을 대파시킨 인물이다. 조조 휘하의 장수가 오·촉 연합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가 바로 그의 역작이다. 결국 여기에 놀아난 조조는 자중지란으로 이들 장수의 목을 벴고 그 결과 수전에 능한 주력군을 상실한 조조는 패하고 만다.

하늘만 원망해서야

그러나 책략가인 주유도 제갈공명 앞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는 날로 세력을 확장해가는 촉의 유비(劉備)를 견제하기 위해 쓰촨(四川) 지방 공략계획까지 세웠으나 이를 실행에 옮기지도 못한 채 병사한다. 그 즈음 "나를 있게 하고 왜 또 제갈공명을 낳으셨는가"라며 하늘을 원망하는 그의 장탄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바다이야기' 파장에 빠진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형국이다. '남의 탓' 타령 일색이다. '네가 좀더 잘 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오지 않았다'는 식이다. 정부·여당에 이어 대통령의 사과성명이 나왔긴 해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책임 소재가 실종돼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인지 두고 볼일이지만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정책실패 또는 권력형 게이트까지 포함한 것인가로 모아진다. 다만 정책시스템이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졌고, 이로 인해 오히려 도박천국을 조장해왔다는 정황론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온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안 짖는다"는 대통령의 '개 이야기'는 두고두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개'와 '바다이야기'의 상관관계를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설정해주는 말도 드물다. 여기에서 '도둑'은 누구인가. 광의적으로 해석해보면 도박천국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당시 정책결정권자나 정치권, 그리고 도박업자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온통 도시와 농촌, 연령과 계층을 불문하고 '바다이야기'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가계를 거덜 나게 만든 인물들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말이란 진실을 허황되게 호도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에서 '개'란 도박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방어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으로 덧칠해져 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언론의 공동 책임론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사태를 촉발시킨 궁극적인 그 원인을 '개'에서 찾는 게 결과론적인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포장한다는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는 듯하지만 이는 결국 남의 탓만 하는 물 타기 식? '책임 회피론'이나 다를 바 없다.

본질 외면하는 정치권 놀음

여기에 오늘날 '바다이야기'의 본질을 보는 시각에 논리상 오류가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다. 엊그제 한나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홍준표 의원이 바다이야기와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같은 당 의원에 대해 자체감찰을 요구하자 강재섭 대표가 이를 '자해행위'로 맞선 사실만 봐도 그렇다. 정책결정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개입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서 이를 감추려는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나는 감싸되 남의 허물만을 들춘다면 무엇 하나 풀 수가 없다. 자신이 떳떳하다면 이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게 정공법이다.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는 법안에 이어 문광부에서 사행성 게임물을 게임산업으로부터 배제하는 법안을 묵살한 당사자는 바로 국회가 아닌가.

아직도 바다이야기에 빠져 책임전가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 사실 자체는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부실 덩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자신의 역량은 가리면서 하늘만을 탓하는 주유의 신세와 닮은꼴이다.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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