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3일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발언한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내 임기는 이미 끝났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봐야 잘 안된다", "언론은 하늘에 헬기를 띄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내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다 기총소사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쏘아댄다".

그래서 "남은 임기동안 개혁 정책들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 특유의 어법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국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 따른 일단의 소회를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 임기 1년 반을 앞두고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게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고립무원에 빠진 이유는?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정치환경이 자신을 따라 주지 않으니 무척 답답할 만도 하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우군(友軍)이 드물다. 한미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비롯해 국정 현안마다 시비가 걸린다. 그것도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니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맘에 드는 인물을 등용하려해도 야당이나 집권여당을 막론하고 모두가 '코드인사'라며 극력 반대한다. 여당에서조차 자신을 따라주지 않는다.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 데도 없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그의 말 속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빠진 청와대의 허탈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런 마당에 성인오락실·상품권 문제까지 불거져 또 한차례 파장이 만만치 않을 듯 하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조카의 '바다 이야기'라는 사행성 성인오락게임 업체와의 연루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오락실 상품권 유통과정에 대해서도 여권 인사 개입설로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이래저래 참여정부의 입지가 불안하기만 하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요즘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말로 얘기하자면 그 당시엔 이른바 '공안정국'을 조성, 몇 사람 잡아다 족치면 해결될 일이었다. 어느 새 한국도 민주화가 정착돼가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1987년 이래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비록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에서만은 외형상 성과를 달성했을지라도 사회와 경제 부문의 민주화는 정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다수 서민층들이 고달픈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우성이다. 그 어두운 그림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지막 국정쇄신책은 없나

요즘 트랜드는 하루가 멀다할 만큼 격랑에 휩싸여 있다. 사회도 한층 다원적으로 분화되면서 다양한 욕구와 견해를 표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민의 갈등 양상도 종전과는 아주 다르다. 반면 정치권은 이를 조정, 사회 통합에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민심을 거슬린 채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오히려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오늘날 정치권을 불신하는 것도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권력기관을 갖고 휘두른 것도 아니고, 나는 특별히 힘이 빠질 이유도 없고, 끝까지 국정 장악력을 갖고 간다."는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이 몇 가지 주문을 덧 부쳐 '대통령 힘내라'는 역설적인 성명을 냈을까 생각해본다. '열린사회'에서 대통령이 할 일은 너무 자명하다. 더 이상 국민 분열의 선봉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정치란 말로 이뤄진다지만 '말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은 자신만을 보고 민생의 고통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리더십을 원한다. 우리는 식물 대통령으로 잔여임기를 마치기엔 그 기간이 아직은 길다고 생각한다. 국정쇄신의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지켜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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