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한국축구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한국인의 열정적인 집단에너지는 결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나서서 펼쳤던 폭발적인 응원전, 지구촌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 저력에 세계인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붉은 악마들의 색채 언어와 율동 그 자체는 바로 한국인의 창조적인 역량이 한데 묶인 데서 출발했다.

이제 또 다시 월드컵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할 한국호의 닻이 드디어 올랐다. 태극전사 23명의 엔트리가 확정됐고, 응원가와 응원복장이 선을 보이면서 한반도 전체가 들썩일 만한 감동의 축제 맞기에 분주하다. '언제, 어디서'나 길거리 응원전을 펼칠 수 있는 한국인만의 유비쿼터스 정신이 살아있는 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울 것이다. 전 국민의 관심사는 바로 4년 전 6월의 그 영광이 재현될 것인가에 모아진다.

하나의 명제(命題) 앞에서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희열과 신바람을 느끼면서 축제 분위기를 창출·동참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것도 한민족 모두가 열광하면서 꿈이 이뤄지기를 빌어보았고 그게 현실로 이뤄졌을 때의 감동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민족적인 신바람은 결국 국운상승의 계기로 자연스레 승화하게 돼 있다. 축구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명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단순하게 승부를 다투는 경기가 아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하기에 선수들의 기량 못지않게 응원전 역시 선수나 관중에게도 흥미진진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축구의 생명은 감독의 리더십아래 선수들이 펼치는 개성적인 기량과 어우러진 팀워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키는 짜릿한 명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하게 마련이다. 적어도 축구가 공정한 게임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우리의 사회 현실과 너무 닮았다. 그중에서도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가 결코 적지 않다. 아무리 현실 정치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 하더라도 거기엔 공정한 경쟁의 원칙이 있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부르는 것은 공정한 규칙아래 국민의 총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다는 '절차적인 가치'를 중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장 5·31 지방선거 양상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으로서 손색이 없는가에 대한 냉철한 자성이 있어야겠다. 지역의 일꾼다운 후보자 가리기에 지역사회의 노력이 한데 모아지고 있는 만큼 아직 성과를 속단하기엔 이르다.

공식적인 선거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장내·외를 막론하고 진흙탕에서 싸우는 몰골이 볼썽사납다. 벌써부터 상대측에 대한 마타도어가 판을 친다. 서로 물고 물리는 정글의 세계를 방불케 할 정도다. 자율, 자치, 책임성을 근간으로 삼는 지방자치의 본래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당의 지방정치 예속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탓이다. 급기야는 정당공천을 받으려는 예비 후보자들이 억대의 검은 돈을 특정 정당인에게 바치는 비리도 서슴지 않는다. 한마디로 원칙이 무시되다 보니 감동도 없다. 황량한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예비 후보자들의 처지가 딱하기만 하다.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라면 우리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러나 정치라고 해서 국민에게 신명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축구처럼 관중에게 꿈을 심어주고 함께 잔치판을 벌이는 일, 그래서 살맛나는 우리고장 가꾸기에 모두가 동참하는 일은 주춧돌을 놓는 심정으로 사소한 데서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도덕성과 전문성 및 자질을 갖춘 지역리더가 과연 정정당당하게 살아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느냐가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관전법이다. 지방선거 무관심 운운하지만 그래도 지역민들은 공정한 게임을 치르려는 후보자에겐 박수를 칠 줄은 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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