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일수록 그 아내가 휘두르는 위력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명장 맥베스가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은 권력의 속성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맥베스를 부추겨 왕을 살해하도록 한 그의 아내는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만다. 인간이 양심을 저버렸을 경우 그 영혼 역시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지만 어디 인간사가 이치처럼 돌아가는 세상인가.

요즘 한나라당의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공천 관련 금품수수 의혹 사건 역시 한편의 연극을 방불케 한다.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 모두 여성들이다. 이들이 조연(助演) 역할에만 그쳤는지는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돈을 주는 사람 입장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남편을 출세시키려는 아내들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으레 대형사건 배경에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뭔가. 정치권 로비과정에서 남성들끼리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그 상대 부인에게 접근하는 사례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만큼 여성이 훨씬 부드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중에 검은 거래로 인한 파장이 확산되더라도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안주인끼리의 비리'로 한정하려는 저의도 있을 수 있다. 1996년 안경테 독점 청탁사건을 비롯해 1999년 경기은행 구명 청탁 사건, 2002년 성남시 분당 파크뷰 아파트 건축허가 로비 등에도 권력층 부인을 표적으로 삼은 예이다. 1999년 옷로비 사건도 장관급 부인들의 호화 쇼핑 풍조를 노린 '안방 정치'의 폐해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관에서 보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수가 없다. 사실 내조(內助)라는 말은 남성우월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 당시 유수한 가문일수록 여성의 역할은 집안 살림살이, 시부모 공양, 자식 양육 등 식솔 거두기에도 바빴다. 남편이 관직에 진출할라 치면 그 희생은 형언키 어려웠다. 남편이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입신양명에만 매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난해서 집안에 찾아온 손님에게 접대할 술이 없으면 머리카락이나 반지를 팔아서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해야 할 처지였다. 돌이켜보면 그게 명분과 허식에 매몰된 반가(班家)의 여성상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오늘날이라고 해서 권력층의 부인에게 요구되는 가치관은 결코 반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덕목으로 무장된 일거수일투족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이젠 단순한 내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인의 경우 그 부인은 정치적 동반자로서 남편에게 조언하고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권력과 이권을 요리하자면 처세술도 능해야 하고 세상을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리라. 세상은 남자가 움직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한때 고위 공직자나 권력층 부인을 상대로 한 내조학(內助學) 강좌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이른바 남편 출세법이다. 인맥형성 및 관리로부터 노래·화술·연설법, 화장·피부관리·코디네이션, 정보 수집·가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평범하지 않는 여성으로, 남편 출세시키는 여성으로 살아가려는 그 심정을 헤아릴 만 하다. 하기야 대통령학(大統領學)에서 퍼스트 레이디(영부인)의 역할은 참으로 막중하다. 함부로 처신할 수 없는 역대 영부인들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분명 내조 덕분에 세상을 얻는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잘못된 내조로 망가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건 잘못된 부부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출직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돈으로 후보자 자리를 산다한들 자신의 양심만은 살 수가 없다. 우리 모두에 상처를 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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