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일본에는 졌지만 그래도 잘했다. 한국은 어제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에서 끝내 일본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일본을 연거푸 두 번이나 누르고도 이런 결과를 빚다니 더욱 아쉬운 심정을 지울 수가 없다. 승부의 세계는 냉엄하기에 불합리한 대진방식만을 탓할 수도 없다. 그에 앞서 한국이 세계 4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두었다는 데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을 만하다.

세계는 여전히 한국 드림팀의 전력에 대해 경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준결승전 이전까지만 해도 파죽지세로 무패행진을 기록했던 그 저력은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100년사(史)를 간직해온 야구의 종주국 미국이 지고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이유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여기에서 자랑스런 우리의 잠재력을 재확인하게 된다. 한국야구를 신기(神技) 경지까지 몇 단계 올려놨다는 자신감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위세에 눌릴 때마다 일본이 불쑥 내놓은 반응은 거의 신경질에 가깝다.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기 일쑤다. 오죽했으면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일본 스즈키 이치로의 망언이 나왔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한 선수의 지나친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인의 오만과 편견에 심취한 표정 그 자체가 섬뜩하다. WBC에서 일본의 코를 두 번이나 내리 납작하게 눌렀으니 국가적인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다. 꺼지지 않는 한국의 투혼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앞으로 한국이 더 잘하면 그만이다.

그간 전 국민이 보여준 응원전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경기 때마다 한국인이 '하나 되는 문화'를 이뤄내는 밑바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미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그랬지만 대한의 아들딸들이라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던 그 모습은 두고두고 세계인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기필코 '소통'을 일구어내고야 마는 '유비쿼터스'의 개념이 한국인의 정신 속에 그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가슴 속엔 은근과 끈기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특유의 정체성이 있다. 추호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돌이켜보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토리노 동계올림픽, 슬러베니아 세계피겨선수권. 독일 세계주니어빙상을 휩쓸었다. 세계정상에 오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각 종목별로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세계 정상에 성큼 올랐다는 것은 무엇에 비할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스포츠가 그만큼 성숙 단계에 접어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피나는 땀과 열정으로 최고기량을 우직스럽게 닦아온 한국인상이 거기에 있기에 그렇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돌풍 행진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 순간에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 및 스텝들에게 더 큰 용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세계 제패의 문턱에서 비록 한 발 밀렸지만 한국야구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한국의 브랜드가치 상승효과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한류 열풍처럼 체육계에도 선수는 물론 지도자 등 인프라 구축은 필수적이다.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보다 치밀하게 다듬어야 할 과제를 남겼다.

비단 한국야구에만 그칠 일이 아니다. 월드컵 당시에도 경험했지만 전 국민이 하나로 뭉치면 그 에너지는 결국 국가발전의 동력도 끊임없이 창출해낸다. 오늘의 어두운 정치나 사회현실에 주는 메시지다. 구태의연한 마인드로는 글로벌 시대를 지향하는 요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각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고루 갖추는 일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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