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논설실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근황이 작년 대선을 앞둔 시점부터 지금까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그 자신의 세계 경영철학이 물거품이 됐는데도 여전히 그의 인생역정은 우리 주위를 맴돈다. 한때 꿈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기도 했던 그는 분식회계와 대우 몰락의 각종 경영비리 연루 혐의를 짊어지고 4년째 해외 도피생활을 하는 처량한 신세다. 이제는 "세상은 넓어도 숨을 곳은 많다"는 그의 비아냥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지난 13일자 '대우 전 회장 보호하는 프랑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김씨 일가족이 지난 8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것은 프랑스 정치권의 후원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 30일 사회보장번호를 취득, 신병 치료에도 도움을 받고 있고 현지 기업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이중 국적자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인터폴 수배자가 활보하고 있다는 것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김우중 그는 누구인가. 분식회계 41조원대, 불법대출 10억원대 등의 대우비리의 정점에 그가 있다. 회사는 망했는데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국가경제의 위기까지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불법·방만 운영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을 외면한 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그의 의존형 현실인식을 드러내 준다.

지난날 재벌의 성장배경이 그랬듯이 대우 역시 박정희 정권 이래 정경유착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정권의 보호막 아래 문어발식 재벌경영으로 몸집을 부풀려 온 종이 공룡에 불과하다. 대우 사태도 한보처럼 지원을 했더라면 우리 경제는 벌써 결단이 났을 것이다. 지난 99년 대우그룹의 해체 당시 부채 규모는 해외 계열기업까지 포함하면 89조원을 기록했다. 한보그룹의 부채가 6조원이었지만 자구책이 늦어지면서 결국 기아, 삼미, 대농 등의 다른 재벌들도 연쇄 몰락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김씨는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유럽, 미국, 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에서 잠행을 거듭하던 그가 갑자기 국내외 언론에 수시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품수수 등의 떳떳하지 못한 비밀을 미끼로 정·관계와 흥정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토록 장기간 해외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미스터리다. 소재 파악이 안된다는 수사 당국의 말에 쉽게 수긍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지난달 27일엔 김씨의 장모가 별세했으나 그의 부인 정희자씨만이 귀국,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 "5억달러를 북한에 퍼 준 현대그룹에 30조원이 넘는 특혜를 지원하면서 대우는 왜 냉정하게 죽였느냐"는 '대우맨'들의 울분도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다. 김씨의 나이도 벌써 66세다. 게다가 병고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귀국해 이른바 '대우의 진실'을 밝히는 게 역사에 부끄럽지 않다. 그것만이 뜨거운 사막과 차디찬 동토에서 오로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피땀 흘린 '대우맨'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가지 놓칠 수 없는 것은 참여정부의 자세다. 그간의 의혹을 속시원하게 풀어 줄 책임이 있다.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의 체포명령에 따라 프랑스 당국이 한국 정부에 김씨의 관련서류를 요청했으나 한국측이 이를 전달치 않아 체포 절차가 중지된 상태"라는 프랑스 언론의 지적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게 사실이라면 그간 국가 공권력이 '눈가리고 아웅'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한 해명도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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