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배재대 교수

이제 유치원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소위 말하는 입학시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언제부터인가 대학입학은 고통으로 통했다.
대학(大學), 그것은 '큰 배움'을 뜻한다. 당연히 대학교는 큰 배움을 얻는 곳이다. 이제 그곳에서도 입학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축하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그 축하를 받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학입학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생 환영장에서 만취한 대학생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일들, 새내기 배움터라 칭하는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듣고 또 봐 왔으며 결국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신입생들은 환영을 받을 것이고, 새내기 배움터로 향해 갈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책임영역을 줄이라면, 우리 정부의 책임이고, 더 줄이라면 교육행정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12년 동안의 고생을 한순간에 보상받으려 한다. 무엇을 보상받겠다는 것인가? 길게 보지 말고 지난 몇개월만 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그들은 입학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괴로움, 환희와 비애를 맛보았는지!

우선 입학원서, 너무나 잘 알다시피 무슨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오른손엔 휴대폰, 왼손엔 원서, 눈은 전광판에, 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 조이며 입학원서를 제출했는가! 그뿐인가? 원서 제출 후의 후회와 환희, 그것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좀더 높은 곳, 좀더 좋은 곳에 넣었어도 무난할 것을, 누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면서 서로간에 생긴 반목, 그것은 또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시간은 흘러 합격자 발표, 합격의 기쁨도 잠시 혹 더 좋은 곳에서 연락이 오진 않을까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기다린 애환과 기쁨의 전화 연락. 이만하면 됐다. 등록하고 나니 또 다른 곳에서 합격했다는 통지문이 날아 온다. 가족회의는 계속되고,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아쉬운 소리와 볼멘 소리로 "등록금 돌려주십시오!"를 연발하면서 돌려 받고 또 내고….

결국 하나를 결정하고 돌아서도 왠지 가슴은 여전히 허전하고, 어디선가 나를 또 찾을 것 같은 심정, 이런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고생이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총체적인 입시제도의 문제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하고만 있을 뿐이다.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 그들은 합격 축하라는 말보다 합격의 감격에 무디어져 있다. 그들은 또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 것 같은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피멍이 든 그들이 새내기 배움터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기뻐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진정시키고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누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차선책에 만족하게 만들었는가? 누가 우리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회 출발부터 눈치만 보게 만들고 있는가? 누가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가? 만신창이가 된 이들에게 시원하게 답해 주실 분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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