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진 대전대 교수·대전여민회 회장

어머니는 소학교(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셨다. 효령대군의 후손이라는 외할아버지가 딸의 교육을 완강하게 반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머니지만 딸들에게는 "너희가 어른이 됐을 때는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만 해라"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촌언니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다 가발공장에 취직해 일하며 월급을 몽땅 부모에게 보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실직을 하고, 또 50대 초반에 암으로 돌아가셨어도 다섯 자매 모두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신념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확고하게 믿었지만 대학을 나온 뒤 난 오랫동안 어머니의 신념에 의문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달리 사회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아니 난, 운 좋게 딸을 차별하지 않는 어머니를 만나서 가난한 살림에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여자들 삶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눈을 뜨고 보니 난 몸만 여자였지 정신은, 마음은 남자였다. 여성적인 것은 열등한 것임을 저절로 익혀 내 안의 여성성을 억압한 채 남성적인 방식으로 살고자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난 여성적인 가치와 여성적인 삶의 방식이 우리 모두가 살 길임을 안다. 공격과 투쟁보다 이해와 화해가, 지배와 억압보다 조화와 보살핌이 나도 살리고 남도 살려 우리 모두를 아름답고 평안하게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사회는 남성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남성적인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그건 아주 아름다운 가치이니 여자들은 계속 참고, 기다리고, 보살피면서 살라고 우겨댄다. 하지만 여성적인 것이 열등한 대접이나 받을 뿐임을 잘 아는 여자들이 무엇 때문에 여성성을 키우겠는가?

그들도 몸만 여자일 뿐 자기 안의 여성성을 한껏 억압하며 남성성을 키워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아름다운 가치라면, 더구나 유사 이래 계속해서 여자들이 참고 기다리고 보살피며 살아 왔으니 이제 남자들이 좀 그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라고 코방귀를 뀔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거칠고, 공격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 버린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자기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발현시킬 때만 원만하고 웅숭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같은 힘으로 작용할 때만 원이 만들어지듯이.

난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는 어머니의 신념에 달았던 의문부호를 감탄부호로 바꾸고 싶다. 입장 바꿔 남자라서 못할 일은 없는 세상을 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느리긴 하지만 세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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