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실종자만 372명을 기록하게 된 이번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지적한 외국 언론의 혹평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처지다. 지난날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던 참사나 충격적 사건에는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화재가 발생한 지 10분도 견디지 못하고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낼 정도로 안전 시스템이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그동안 국격(國格)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엄청난 참사를 겪을 때마다 정신없이 허둥대면서 탄식만 했지, 사고를 자초하게 된 근원적인 요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거의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안전 불감증에 있다. 충격적인 참사가 터질 때마다 법석을 떨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잊어버리는 병부터 고쳐야 할 때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전·충남의 다중이용시설에는 여전히 안전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이들 시설에 대한 소방점검 결과 대전은 1만4643건 중 1739건이 불량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충남은 1만710건 중 518건이 지적을 받았다. 물론 불량시설은 즉각 시정조치가 이뤄지게 마련이지만, 정기점검이 있을 때마다 적지 않은 지적사항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당국의 소방점검 결과 영락없이 지적사항이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이 사후약방문적인 일면이 있다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중이용시설에는 언제나 불안요인이 방치되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적은 불씨가 언제 어떠한 참사를 자초할 지 모른다는 교훈은 소중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설마가 화를 자초하게 마련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시스템 정비와 안전의식을 생활화하기 위한 범국민운동도 필요하다. 소방법규 등 관련 법규의 미비점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업소의 시설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시스템을 반드시 갖추게 해야 한다.

노래방 등 밀폐된 공간이 많은 업소나 지하에 있는 대형업소일수록 비상구나 대피장소를 따로 마련해 놔야 한다. 4층 이하의 건물은 비상계단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방법의 규정도 납득할 수 없다. 우리가 더 이상의 참사를 겪지 않으려면 국민의 생명존중의식을 획기적으로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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