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 특집] ETRI

인공지능 개발 관련 데이터 일반에 공개
대표기술 ‘엑소브레인’ 489개 기관 사용
인터넷 느려짐 막는 ‘맥(MAC) 기술’ 개발
3GB 영화 1초에… 시장규모 212억불 예상
자율주행차 정밀지도 자동으로 만들고 갱신
스마트폰 앱으로 자율주행차 호출·운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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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윤희섭 기자] 정보통신기술(이하 ICT)이 과거에는 단지 산업의 보조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민들의 시선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에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TRI가 정보통신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국책 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연구, 개발하는 정보통신 디지털 혁신기술로부터 우리나라의 미래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다. ICT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다가올 미래의 키워드는 ‘초연결·지능화·인프라 (D·N·A)'라 할 수 있다. 양질의 데이터(D)를 네트워크(N)로 모아 인공지능(A)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모든 조직이 사활을 걸고 있다. ETRI에서도 미래 혁신을 선도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원천기술 연구에 주력하며 오는 2023년까지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연구실 50개를 만든다는 기치 아래 연구 체제를 정비 중이다. 미래 대한민국의 혁신 성장을 견인할 ETRI의 대표적인 기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촉각신경만큼 빠른 인터넷 시대의 개막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게 대표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초고속 인터넷.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인터넷 속도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을 ETRI가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종종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사용자의 위치에서 인근 통신국까지 사용자가 많아지는 경우 즉 트래픽이 증대돼 처리속도가 느려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ETRI는 약한 광 입력 세기에도 신호를 깨끗하게 복원하는 '고속 광수신 모듈 기술'과 광섬유에 전달되는 패킷을 관리하는 맥(MAC) 기술을 개발해 느려지는 현상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했다. 해당 기술들을 활용하면 미약하게 전달되는 신호에도 정보를 교환하고 데이터 흐름을 정리할 수 있어 트래픽이 많아져도 지연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존에는 사용자들이 고속도로 하나를 나눠썼다면 고속도로 차로와 최고속도를 늘려 빠른 통행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이 기술이 적용하면 기존 유선인터넷 최대 속도를 뛰어넘는 25Gbps급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이는 3GB 용량의 영화를 1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는 속도이자 인간이 촉감을 느끼는 속도(0.001초) 수준과 같아 '촉각 인터넷'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의 강점 중 하나는 대규모 공사나 재투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증 테스트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지난해 데이터 전송 실험에서 260㎞ 떨어진 거리에서도 실시간으로 로봇(펜들럼장치)를 제어하고 4K UHD급 영상을 전송하는데 성공했다. ETRI는 이 기술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세계시장 규모가 오는 2020년 153억불, 2024년에는 약 212억불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빨라진 통신 속도로 관련 장비산업과 생태계에도 큰 경제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기술의 연구책임자인 ETRI 정환석 박사는 "고화질(UHD화질 이상)의 방송,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실감형 콘텐츠를 활용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주로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며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방사능 피폭지역이나 오염지역 등에 로봇을 대신 투입하는 등 사람 대신 일을 처리하는 제어 목적의 활용도 많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스스로 이동 경로 생성·인식하는 자율주행 SW기술


ETRI는 자율주행 구동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은 자율주행차가 도로주변 환경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정밀지도(맵)를 자동으로 만들고 갱신하는 기술이다. 레이더와 라이다 등 센서에서 얻은 정보로 정밀지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도로 상황을 인식하며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소형 전기차처럼 전력 수급 조건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율주행 기술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알고리즘 SW를 최적화한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수많은 센서 정보와 알고리즘을 동시에 구동하기 위해서는 수백와트(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해 차의 크기가 대형화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구진의 기술은 노트북 두 대 정도의 소비전력인 100와트(W) 수준에서 알고리즘 구동이 가능해 자율주행차 개발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다.

생성된 정밀 맵의 품질 역시 우수하다. 실제 지형과 오차범위가 10㎝ 이내이며 미국 자동차기술학회가 정의한 고도 자율주행 3~4단계(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운전자 제어가 필요 없음)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ETRI는 2017년 이 기술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로 공원 일반 도로 580m 구간에서 실제 자율주행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본 성과를 인정받아 연구진은 ICT 이노베이션 국무총리상 수상, 국가 과학기술우수성과 등에 선정됐다.

연구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들의 서비스 편의에 초점을 맞춘 SW기술을 더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를 호출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스마트폰에 입력 후, 자율주행차를 부르면 호출자의 위치로 다가온 뒤 목적지로 출발한다. 호출자가 모바일을 통해 차량 내 탑승자가 없는 빈 차를 불러 자율주행을 하는 사례는 처음이다. 본 기술 역시 연구개발을 주도한 공로로 자율주행연구그룹의 민경욱 박사가 창립기념식에서 올해의 연구자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ETRI 민경욱 박사는 "향후 딥 러닝 기술을 적용한 자율주행 기술의 고도화를 위해 알고리즘의 성능 향상 및 안정화, 최적화 작업을 계속 연구할 예정”이라며 “수집한 빅데이터를 무인자율주행 관련 연구를 하는 대학과 기업 등에 개방할 계획도 세웠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 ETRI가 팔걷고 지원한다


많은 개발자들이 인공지능 관련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관련법규의 제한, 아이디어의 실현 방법 등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원은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고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관련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연구진은 2017년부터 관련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주요 공개 정보는 언어·음성·시각지능 응용프로그램(API) 및 데이터 등이다. 연구원이 공개한 질의응답, 대화처리, 객체인식, 음성인식(다국어) 등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면 국내 중소기업이나 연구자 및 개발자들이 보다 효율적인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ETRI 인공지능 연구의 산물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기술은 '엑소브레인(Exo-Brain)'이다. 엑소브레인은 인간 수준으로 문장을 분석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로 2016년 장학퀴즈에 나서 인간 퀴즈왕들과 대결을 펼친 끝에 승리를 거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엑소브레인에 사용된 기술 역시 Open API 형태로 공개하면서 489개의 기관에서 380만 건의 사용이 이뤄졌다. 집집마다 보급이 늘어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에도 ETRI 데이터의 많은 활용이 이뤄졌다. 연구원이 공개한 '질의응답 API'가 사용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쓰인 것이다.

또 평창에서 공식 통역사로 활약한 어플리케이션에도 ETRI의 '다국어 음성인식 API'가 활용됐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발화를 바로 문자(텍스트)로 변환하면서 외국어 소통 장벽을 무너트린 대표적인 기술이다. 이렇게 ETRI에서 공개한 SW API 데이터는 지금까지 1164만 건 이상 활용됐다. 주로 산업체에서 많은 활용이 이뤄졌으며(42%) 나머지는 학교(33%), 개인(19%), 기타(6%)의 순으로 ETRI의 데이터를 찾았다. ETRI 오픈 API 플랫폼은 일 평균 사용횟수가 2만 3000건에 달할 정도로 서비스 개발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ETRI 서울SW-SoC융합R&BD센터 이성희 지역ICT융합연구실장은 "서비스 이용자들이 많아지면 이를 통해 다시 양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며 “ETRI의 데이터 공개 작업이 우리나라 인공지능 생태계의 선순환은 물론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대전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희섭 기자 aesup@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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