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대학시절 기자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꿈 많은 국문학도였다. 취직이 안 돼 ‘국문과’가 아닌 일명 ‘굶는 과’라는 웃지 못 할 별칭이 붙어도 시·소설·수필이 좋았고, 글 쓰는 게 즐거웠다.

현재 문학과는 거리가 다소 있는, 하지만 여전히 글 밥으로 먹고 사는 신문기자가 됐다. 그리고 여전히 끝없는 창작에 대한 열망과 문학정신으로 반짝이는 문인들을 동경한다.

그런데 최근 대전지역 원로문인들의 행태를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전문화재단에선 최근 2년간 지역의 원로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향토예술인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문학분야 결과물을 뒤늦게 비교해 보니 2년 연속 지원받은 원로문인 7명의 작품 두 권이 중복됐다. 한 원로 소설가는 2018년 발간작품집 수록 3편 중 2편의 작품이 전년도 지원을 받아 낸 발간작품집의 작품과 동일했고, 한 시조시인의 경우 무려 97%(92편 중 90편)가 같았다. 이 정도면 ‘자기복제’ 급이다. 이 중엔 과거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던 원로도 포함돼 있다. 더욱 더 실망스러운 부분은 해당 문인들이 이 같은 실수(?) 혹은 고의를 인정하면서도 단 한 명도 지원금을 환급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한 원로 문인은 ‘몸이 아프다’며 즉답을 피했고, 한 소설가는 ‘돈 없다’며 배 째라는 식이다. 또 다른 문인은 입장을 밝히지 않기로 나머지 전원과 논의됐다며 입을 닫았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일간지를 대상으로 기사 삭제 요청까지 넣으며 편집권까지 침해하는 상황이다. 재단 지원사업 취지 역시 창작지원이 아니라 출판물 발간지원사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대학시절 창작은 성스러운 행위이며, 작품을 통해 발현되는 문학의 힘은 감히 돈과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굶는 과’로 치부해 통·폐합되기 일쑤 임에도 국문학을 선택하고 문학계를 이끌어 나가는 후배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전지역을 대표하는 원로문인으로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돼 주시길 바란다. 돈 몇 푼으로 그간 지역에서 쌓아온 명예와 위상, 그리고 양심을 팔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란다.

최윤서·대전본사 취재1부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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