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조지훈 ‘낙화’의 시작 구절이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 시작된 비바람이 밤까지 몰아칠 때, 주말에 만개했던 봄꽃 무리를 떠올리며 이 시구를 되새겼다. 건조한 대기를 적셔 산불 걱정을 덜게 해 준 고마운 비였으니 꽃이 진다고 탓할 리는 만무하지만, 활짝 피어나자마자 흩어질 봄꽃 생각에 과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비가 그친 후 다시 대청호 주변을 돌아보니 비바람을 견딘 꽃들이 더욱 생생하고, 봄비를 머금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 한층 더 화사했다.

지난 5~7일 동구의 대표 축제로 육성하고자 지난해부터 준비한 제1회 대청호 벚꽃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3만 5000여명에 달하는 상춘객이 찾아 만개한 벚꽃과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축제를 준비한 입장에서는 기대를 웃도는 방문객 규모도 반갑지만, 처음 개최하는 축제가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직원들의 노고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그리고 찾아주신 분들의 시민의식 덕분이다.

제1회 벚꽃축제가 열린 동구 벚꽃길은 국립수목원에서 전국 20선 중 하나로 선정한 왕벚나무 가로수길로, 대청호반을 따라 길이가 무려 26.6㎞에 달한다. 회인선이라고도 부르는 지방도 571호선 구간이 포함돼 과거에는 회인선 벚꽃길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부르고 있다. 벚꽃놀이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아오모리현 이와키산 벚꽃길도 수 갈래로 나뉜 총 연장이 20㎞이니, 한 갈래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데다 대청호반 풍광이 더해진 동구 벚꽃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보물이다. 세계 기네스 기록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이른 봄부터 차례차례 피어나는 동백꽃,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유채꽃, 철쭉이 없다면 봄을 기다리는 일이 지금처럼 설레지 않을 것이다. 개화 시기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열린다. 그 중에서도 벚꽃은 명실상부 봄의 전령이다. 꼭 명소가 아니더라도 꽃이 만개한 벚나무는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봄 축제를 열어준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벚나무를 검색하면 무려 16종이 나온다. 과거에는 벚꽃이 일본 국화(國花)라 해 가로수로 식재된 벚나무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국화가 없고, 벚꽃은 국화(菊花)와 더불어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꽃일 뿐이다.

올해 벚꽃 전성기는 지난 주말로 끝인 듯싶다. 어쩌면 벚꽃의 매력은 그 화사함뿐 아니라, 순간 우르르 피었다가 아차 하는 사이 져버리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흩날리는 꽃잎은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이번 봄에는 벚꽃을 즐길 기회를 놓쳤더라도 내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제2회 대청호 벚꽃축제에서 더 많은 분들을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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