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지난 11일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오페라 ‘천생연분’은 CNU창작오페라중점사업의 첫 작품이자 한국창작오페라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촉발시킨 지역의 중요한 음악적 사건이었다.

그동안 경쟁력있는 한국창작오페라를 만들어 향유하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대전에서의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남대 예술문화연구소에서 발족한 CNU창작오페라중점사업단은 오페라에 대한 외연을 넓힘과 동시에 한국창작오페라가 나아갈 길, 나아가 우수한 창작오페라를 발굴해 해외음악계에 소개하는 일까지 포괄하는 한국창작오페라 산실의 플랫폼 역할에 과감히 도전했다.

그 첫 쇼케이스로 선택된 오페라 ‘천생연분’이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탄탄한 구조 속에 신선한 감동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페라 ‘천생연분’이 대전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이 작품은 2005년 국립오페라단 위촉으로 창작돼 200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결혼’이란 제목으로 초연됐다. 이후 국내 주요 공연장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터키, 홍콩 무대에서 호평받고 지속적으로 공연된 한국의 대표적인 창작오페라다. 작곡가 임준희는 10여개 국악기를 서양오케스트라와 함께 사용하며 한국전통음악에 뿌리를 두고 고유의 리듬과 선율이 자연스럽게 서양음악양식에 녹아들어가도록 작곡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갖추기 위한 작업은 공연을 거듭하면서 꾸준히 이뤄졌다. 예컨대 출발은 조선시대 배경의 ‘맹진사댁 경사’를 원본으로 신분사회의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결혼’이 ‘천생연분’ 제목으로 바뀌면서 그 취지에 맞게 2014년에 극적진행과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 모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인연을 만들어 현실에서도 천생연분이 될 수 있게 끝난 행복한 결말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쾌한 오페라로 재등장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2019년 대전 무대에 오른 ‘천생연분’은 전막공연이 아닌 주요장면을 뽑은 하이라이트 공연이었고 지역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이었다.

전문오페라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무대디자인과 조명, 영상 등 원작이 지닌 완성도 높은 전체그림을 기대할 수 없었고 다소 부족한 악기구성으로 밀도 높은 음색을 풍성하게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오페라 연출에서도 관객은 작품이 뿜어내는 풍자와 해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주도적인 의지로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결단력과 진실한 마음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연극적인 요소가 강화돼 마당극과 같이 극적 재미가 배가됐다는 점은 기존 무대와 차별화된 요소라 할 수 있다. 1시간 남짓한 공연시간이었지만 잠시도 지루할 틈 없이 생동감 있게 만든 노련한 연극배우들과 탄탄한 노래실력을 갖춘 남녀주인공들은 무대연출이나 외적 요소가 화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오페라라는 장르에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결과적으로 CNU창작오페라중점사업단의 첫 작품 ‘천생연분’은 다각도로 중요한 의미를 던지고 막을 내렸다. 잘 만든 한국 창작오페라가 서구 유명 오페라와 비교해 오히려 예술성과 오락적인 측면에서 감동과 재미가 극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점, 정교한 대본과 수준 높은 음악은 오페라의 본질이자 긴 생명력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점, 나아가 한국오페라의 창작과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줬다.

CNU창작오페라중점사업단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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