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오 이동녕 선생’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100년전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였고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도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임정 주석 4차례, 의정원 의장 3차례, 국무령, 국무총리 등의 중책을 맡았다.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음에도 독립유공자 서훈이 2등급에 불과하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제야 그의 서훈을 대한민국장 1등급으로 올려야 한다는 제안이 힘을 얻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동녕 선생은 1869년 2월 17일 천안시 목천읍 동리에서 태어났다. 진사시험에도 합격한 선비였으나 벼슬길 대신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1893년 원산으로 가서 부친을 도와 광성학교를 세우고 교육 계몽운동을 펼쳤다.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국권수호운동을 전개했다.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개화 개혁운동을 전개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신민회를 결성, 총서기로 활약하면서 국외 독립군 기지 개척론을 주창하였다. 이회영 일가 등 신민회 동지들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모체)를 세워 독립군 기지를 개척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건너가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을 맡아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수행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을 만들었던 임시의정원의 개원 10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현재 국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임시의정원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했던 날이다. 국민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제국의 백성'에서 '공화국의 주인(국민)'으로 바뀐 날이다.

그럼에도 이동녕 선생 서훈이 고작 2등급이라니 어울리지 않다. 유관순 열사 서훈 1등급 상향 조치를 계기로 선생의 서훈 승격 요구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던 이회영 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충남 시·군의장협의회, 충남교육청,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석오 이동녕 선생 선양회 등이 나섰다. 뒤늦었지만 선열들의 위상을 되찾는 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