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고약해'란 말이 있다. '비위에 거슬릴 정도로 나쁜, 성질이 괴팍한, 날씨가 거친'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술버릇이 얼마나 고약한 지 직원들이 술자리를 절대 하지 않는다.", "두리안(열대 과일)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호텔에서 먹을 수 없다." 이 표현이 진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면 믿을 수 있을까.

먼 옛날 아주 성질 고약한 사람이 살았다. 얼마나 성격이 고약했으면 임금도 눈치를 봤다고 한다. 보통 센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고약한 사람의 이름이 '고약해(高若海)'다. 오죽 고약했으면 '고약해'라고 이름을 얻었을까. 혹시 별명이 아닐까. 아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살았던 실제 인물이며 두루 벼슬을 거친 문신이다.

고약해가 이름값을 제대로 발휘한 시기는 세종 때다. 그는 세종의 언행이 마음에 안 들면 째려보기도 하고, 심지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가 일쑤였다. 왕이 그릇되면 가차 없이 쓴소리를 해댔다. 세종이 감히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고약해는 역사상 왕이 신하를 두려워한 초유의 사태를 빚은 주인공이다. 왕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한 고약해도 충신이었지만 이를 용인한 세종 또한 성군이었다.

세종 9년(1427년) 호조참판이었던 그는 지방관 6년 임기제(首領六期制)의 폐지(기간을 늘려야함을 주장)를 세종에게 건의하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모질게 대들었다. 그는 '실망했습니다'라는 한마디에 파직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세종은 개성 유수부 유수로 재등용했다.

요즘 고약해 같은 사람이 있을까. 윗사람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저 성질 안 건드리고 비위만 맞추는 '딸랑이'만 득실대는 세상이 아닐까. 그러니 한마디로 나라 기강이 개판이다. 딸랑이들아. 떡밥은 먹이가 아니다. 미끼라는 점을 명심해라. 언제가는 얻어 걸린다. 그땐 끝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 고약해가 환생하기를 학수고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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