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지금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19세기 미국 네브래스카주 중서부 지역은 더없이 척박한 땅이었던 모양이다. 집을 짓거나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는 고사하고 작렬하는 태양을 피할 그늘조차 찾기 어려웠다. 이곳에 정착한 개척자 스털링 모턴은 자신의 땅에 나무를 심었다. 이웃에게도 “메마른 평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나무를 심자”고 호소했다. 많은 사람이 이에 호응했고, 1872년 4월 세계 최초의 식목 행사가 열렸다.

국내에도 전파돼 미군정 시절 4월 5일을 식목일로 지정했다. 한때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현행 유지로 결론을 내렸다. 통일까지 대비하자는 대의와 식목일의 상징성 때문이다. 양력 4월 5일은 신라 문무왕 17년 삼국통일 완성을 기념해 나무를 심은 날로 기록돼 있다. 또 조선 성종 24년 선농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밭을 갈았는데 이날 역시 4월 5일이다.

1969년 1월 미국 산타바바라에서 사상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시추 시설의 갈라진 틈으로 1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환경재앙의 심각성을 목격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넬슨은 끝장토론을 제안했고, 대학생이던 헤인즈는 대규모 캠페인을 주도했다. 1970년 4월 22일 열린 거리 행진에는 무려 2000만명이 참여했다. ‘지구의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메마른 평원에 생명을 불어넣고 환경재앙으로부터 지구를 살리려는 이러한 노력에도 환경 문제는 21세기 전 지구적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미세먼지가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심각해진 상황이다. 얼마 전 미세먼지 관련 법안 8개가 국회를 통과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도 발족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국가 간 협력은 물론 국내 산업·에너지 구조 전반에 걸친 문제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근거 없는 공포 조장보다 발생 원인의 정확하고도 과학적인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에너지와 환경에 관한 인식과 패러다임의 전환도 필요하다. 동시에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전 서구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미세먼지 알리미 전광판을 설치해 신속하고 정확한 대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비상 발령 시 행정·공공기관의 철저한 차량 2부제 시행과 노상주차장에서의 공회전 금지, 운행차 배출가스 점검 등 대기 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과 미세먼지 마스크를 보급하고 어린이집과 경로당에 2300여 대의 공기청정기를 지원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조림, 도시 소생태계 조성, 태양광 발전·지열 난방 시설 설치 사업 등도 추진한다.

서구는 깨끗한 환경과 구민 건강에 필요하다면 작은 일이라도 찾아 실행에 옮겼다. 미세먼지와는 별개로 음식물쓰레기 감량을 위해 공동주택 RFID(무선 주파수 인식) 종량기 설치 지원 사업을 5년째 펼치고 있다. 설치 전과 비교해 평균 40%의 음식물쓰레기를 줄였고, 6400만원을 아꼈다. 구는 앞으로도 구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실행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초 살수차 운행에 잠시 동행했다. 하늘과 도시를 뒤덮은 미세먼지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컸다. 단번에 사라지게 할 방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식목일과 지구의 날이 있는 4월을 맞아 환경문제에 앞장섰던 선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나무를 심고, 잠시 실내 전등을 껐다. 작은 실천과 행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4월이 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