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대전에 와서 충남의 화법에서 양반문화를 본다. 양반문화의 우아함은 직선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내재적이고 간접적이다. 나와 상대방의 거리를 유지하고, 그 관계의 거리를 모호함으로 두고, 완충지대를 유지하는 배려의 화법이다.

사람들은 눈빛에 감정이 금방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충남의 화법은 눈빛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선을 존중하는 고도의 예절이다. 관계의 거리는 현대미학의 핵심개념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은 대상과 거리를 유지할 때, 나의 마음과 대상이 오롯하게 자신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감성반응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거리를 유지하는 미적태도다. 거리의 유지는 상대방을 관찰하고, 또 상대방은 나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관찰은 태도가 된다. 한편으로 요즘처럼 속도가 빠른 시대에, 세상은 상대방의 감정을 관찰할 여유도 없이 달려갈 때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려면, 나와 상대방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감성지능의 가능성을 본다. 감정지능은 인공지능(AI)처럼 감성의 법칙을 세우든가 혹은 수많은 감정 데이터를 학습해 감정지능을 높이는 것으로 설정해 본다.

감정은 복잡다단해 좀처럼 법칙을 세우기 어렵다. 역시 수많은 감정데이터를 학습해 감정지능을 높인다는 전제가 수월하게 보인다.

감정데이터를 어떻게 모을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기쁨, 슬픔, 분노,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본다. 신기하게도 기쁨은 손을 들고 웃는 모습, 슬픔은 울고 있는 모습, 분노는 화낸 얼굴의 사진들을 검색 결과로 보여준다.

사람의 표정을 관찰해 감정을 읽어내고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양반문화처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어떻게 감정지능을 높일까?

나는 감정지능을 높이는 방법으로 고전의 데이터를 제시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논어일 것이다. 논어가 쓰여진 후 지금까지, 대략 한중일 베트남의 인구와 그 중에서 논어의 책을 읽었을 사람의 수를 계산해 본다. 논어는 현재의 데이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긴 시간 속에서 축적된 감정데이터다.

감정지능을 일순간에 알아보려고, 사람들이 가장 공감했을 논어의 첫 장을 펼쳐본다. 배우고 익힌다는 배움의 기쁨, 멀리서도 찾아오는 친구가 있는 기쁨, 인정받지 못했을 때 분노하지 않는 감정조절이다. 감정기능은 기쁨과 분노로 나누어 보면, 공감미술의 바로 무엇인가에 선문답과 같은 대답이 나온다.

공감미술은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기쁨을 주는 예술이다. 공감미술은 비가 오고 궂은 날에도 미술이라는 이유로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한 예술이다. 공감미술은 작품이 좋다고 당장 인정받지 못해도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간다는 예술이다.

이렇게 우아한 예술이 공감미술이다. 공감미술의 격조로 논어의 ‘진선진미(盡善盡美)’의 세계가 ‘예술진미(藝術盡美)’가 되는 순간을 수없이 느껴본다.

예술진미의 첫 시리즈로 ‘공감미술과 문화외교’라는 강연을 했다. 나의 부족한 강연을 들으러 비가 오던 날에 멀리서 새벽차를 타고 온 친구와 강연을 마치고 반가운 이야기들을 나눈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수년을 안 것처럼 많은 이야기가 오가며, 예술의 공감은 상호 존중의 거리를 유지하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신비로운 기제라는 것에 감탄과 감사를 보내게 된다. 미술로 공감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 새벽에 눈을 뜨면 훈풍이 마음에 가득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밤에는 소중했던 순간들로 감사하다.

이제 나의 감정을 보호하고 아끼는 강력한 방어기제는 바로 공감미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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