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리 부인의 이름을 딴 프랑스의 마리 퀴리 초등학교.
부산시 기장군 대변(大邊)초등학교가 지난해 봄부터 용암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라에 바치는 공물을 보관했다는 대동고가 있었던 근처 해변이라는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에서 유래했다는 의미 있는 이름이지만 어감상 뉘앙스에서 어린 학생들이 상처를 받아왔다는데 뒤늦은 감이 있어도 개명은 반가운 일이다. 역사와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일부 지역주민이나 동문들의 반대도 있었겠지만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의 희망을 감안한 전향적 조치였다. 야동초등, 백수초등, 김제동초등학교 등 듣기에 따라 여러 느낌이 드는 교명이 아직 여럿 있지만 우리나라 학교 이름 절대 다수가 유서 깊은 지역 이름에서 유래한 만큼 감성사회가 진행되는 이즈음 앞으로 학교 이름을 바꾸는 사례는 늘어날 전망이다.

지명에서 연원하는 이름 짓기는 단순하고 그런대로 무난한 까닭에 우리나라 행정동, 법정동 이름이나 길, 광장을 비롯한 숱한 작명의 바탕이 되어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특히 해군에서는 함정 이름에 인명을 차용하여 명명하는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있다. 예전에는 주로 충남함, 강원함, 시흥함 같이 광역, 기초자치단체 명칭을 따왔지만 이후 위인이나 애국 인물, 명사들의 이름으로 배 명칭을 붙이고 있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방면의 선구자인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길과 광장, 산책로 이름은 물론 기차역, 공항 그리고 대학 이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름이나 역사적 연대기를 붙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걸출한 인물들의 이름을 따온 학교 이름은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경우 디드로 대학(파리), 몽테뉴 대학(보르도), 파스칼 대학(클레르몽-페랑), 발레리 대학(몽펠리에) 등은 나름 연고가 있기도 하지만 루이대왕 고등학교, 앙리 4세 고등학교(파리)를 비롯한 수많은 초·중·고 이름은 본받을 만한 인물을 추앙하며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긍지를 북돋운다.

우리 사회는 왜 사람 이름을 공공기관이나 길 이름에 붙이기를 망설였을까. 충무로, 퇴계로 같이 오래 전 명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이후에 새로 정했다 하더라도 보급과 활용은 더딘 편이다. 세종(世宗)특별자치시는 그런 의미에서 지역명칭 제정의 모범사례가 된다. 앞으로 길과 광장 등 공간명칭은 물론 각급학교, SOC를 비롯한 공공시설, 공원과 숲 등 여러 층위의 이름에 친근하고 본받을만한 인물들의 이름이 널리 활용되어 참신한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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