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이사

아침에 일어나는 알람이 어느새 스마트 폰으로 대체됐다. 알람을 끄면서 습관적으로 스마트 폰을 열고 인터넷 기사를 읽거나 SNS를 확인한다.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고 나서 지하철이든 버스이든 다시 스마트 폰을 켠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 폰에서 주요 뉴스를 본다. 속보로 뜬 비행기 추락으로 인한 사망사고, 뉴질랜드 총기난사 등 주로 미담보다는 충격, 공포, 좌절 등 자극적인 기사가 중심이고, 나 또한 무언가에 끌리듯 이런 부정적인 기사에 클릭을 하고 글을 읽는다. 이러한 큰 속보가 없는 날에도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일가족이 동반 자살한 기사 등, 내가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하는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를 읽고 또 읽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마치 악몽을 꾸고 난 하루의 시작같이 불안하다. 이 시대에 소통을 위해서는 스마트 폰 없이 살 수도 없는데 시간을 줄이고 꼭 필요할 때만 써야지 라는 생각도 잠시 점심을 기다리면서,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해서, 하물며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스마트 폰을 켜고 무언가를 보고 또 읽는다.

많은 이들이게 기다림이란 이젠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의 다른 이들의 기사를 읽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예전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찰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은 많은 이들이 자신을 멋지게 표현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있는 곳을 가고, 좋은 사람과 있고, 하물며 혼자만의 휴식도 셀카로 찍어서 SNS에 올린다. 나 쉬고 있음을 자랑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특징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 나를 보여주는 것에 중점이 있다. SNS에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진을 찍다 보니 정작 내 눈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잘 모를 때가 있다.

어느새 아파트 단지 앞에 목련꽃이 피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온 것이다. 지난겨울 나는 스마트 폰으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알게 됐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지난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과 소통하고 대화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에게는 나를 알리고 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가 쓰고 싶어 졌다.

문구점에 들려 자그마한 일기장을 사고 모두가 잠든 저녁 나름 경건한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어떻게 시작을 할까 하는 망설임도 잠시 어느새 일기장은 나의 독백으로 한 페이지가 가득 채워졌다. 초등학교 때 오빠가 내 일기를 몰래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었던 기억이 났다. 나 스스로에게 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알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자존심이 상처 받았던 기억이 났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늘의 이 일기도 누군가가 읽게 된다면 엄청 화를 내겠구나 할 만큼 일기장에 쓰인 나의 글은 진심이었고 나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솔질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목욕을 한 것처럼 일기장을 덮고 개운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스마트 폰을 켜지 않으리라. 제목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책처럼 오늘부터 다시 마흔둘의 일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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