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상의를 이끄는 사람들 - 2>
자동차부품 제조 전문기업 페더럴모굴 세종㈜ 이빅터우형 대표

무작정 떠난 미국서 도전 배워
기술 고도화·전사원 가족화 앞장
노하우 배우던 독일에 기술전수


[충청투데이 이승동 기자] 45년전 2억만리 미국으로 세상구경을 떠난 철 없는 스무살 청년이 국내 자동차부품 제조업계 거물이 되기까지. 이빅터우형 대표(세종상공회의소 부회장·사진)는 그야말로 돈키호테 같은 삶을 살았다.

'뻔뻔함과 무모함, 불굴의 개척정신, 끝장을 보고야 마는 투지.’ 이빅터우형 대표는 몸에 배인 도전정신, 무한신뢰와 고객감동을 앞세워 자동차부품 제조업계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1975년 이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대표의 도전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인 삶에 순응하기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떠나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죠.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돈키호테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우선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큰 책임이 뒤따르더군요. 시련의 시작도 이때부터 였습니다."

이 대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악세사리 도매업, 가발 도매상 종업원, 진공청소기 판매원, 해산물 도매업, 투자회사 직원. 대학졸업과 함께 이 대표가 거머쥔 명함은 대충 훑어봐도 수십 여개다. 이 대표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질리도록 세상과 맞섰다.

"25살 나이에 젊은 혈기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죠. 이후 뉴욕 브로드웨이 가발 도매상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 악세사리 도매업을 시작했습니다. 꼬박 하루 10시간 씩 일하면서 매 순간 허기를 느꼈어요. 이때쯤 인가 싶습니다. 일상의 틀을 깨고 싶었어요. 개척정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가방매장에서 번 돈으로 미국 대륙횡단에 나섰습니다. 횡단을 마무리하고 수산물 도매업에 뛰어들어 미국 삶을 택한 이후 처음으로 성공을 맛봤습니다."

이 대표의 역전 인생의 시작이다. 이 대표는 난생 처음 짜릿한 성공의 맛을 본 뒤 투자회사에 몸을 담았다. 이 시기, 사이판 정부와 사이판 개발 투자계약을 성사시키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 대표가 흘린 땀방울은 페더럴모굴세종을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결실로 돌아왔다. '기술의 고도화, 전사원의 가족화'의 경영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페더러모굴 세종은 1982년 자동차 엔진 베어링 업계 최초로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지금은 국내 완성차 업계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페더럴 모굴 세종에 합류해 혁신과정을 거쳐 유수한 세계 시장의 신기술을 습득, 끊임없는 기술개발 및 투자 설비투자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미국 자동차 부품 종합메이커 회사인 Federal mogul 사와의 합작과 함께 페더럴모굴 세종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외국투자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자동차 엔진 베어링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제조 전문기업 페더럴모굴세종. 국내 모든 완성차 기업을 고객으로 하고 있다. 자체 소재부터 가공 및 도금에 이르기까지 부품생산에 따른 관련 기술력과 품질의 고도화를 위해 지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 기술 노하우 전수를 받던 독일 업체에게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등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불가능이란 없다. 절대적이다. 뭐든지 해보면 길이 있다. 회사 직원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두 잃을 수 있다"면서 "세상을 넓게 보고 세상의 틀을 깨야 한다. 세상의 틀을 깨는 고난과 경험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동 기자 dong7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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