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남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사장

59년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시민들의 관심 속에 ‘3·8민주의거 기념식’이 지난 8일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진행됐다. 새삼 역사의 준엄한 흐름을 느끼게 된다. 민주주의가 자유당 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질 때 대구 경북고 학생들의 ‘2·28 민주화운동’과 대전고의 ‘3·8 시위’, 그리고 마산의 ‘3·15 의거’로 촉발된 1960년의 거센 함성은 결국 4·19혁명의 도화선이 돼 대통령 이승만의 하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던 외국 기자의 말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 우리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4·19혁명 그리고 그것을 일어나게 한 3·8민주의거는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필자는 3·8의 국가기념일과 함께 앞으로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중요하며 ‘3·8 기념관’과 같은 후속 사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존 박물관이나 여러 기념관과 함께 대전의 100년 역사를 보여줄 수 있고, 또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자나 시민들을 위해 가칭 ‘대전역사자료관’이 건립될 시기가 됐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즐겨보는 한 프랑스 방송 중 ‘역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랑스 역사상 눈길을 끌었던 사건이나 인물을 조명한다. 약 2시간 동안 역사학자의 인터뷰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증을 통해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된다. 이 프로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몇 백 년 전 당시의 물품이나 기록물을 자료관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이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이 쓰던 화장용품과 기구, 의류와 가구 또 여러 기록이 자료관에 보존돼 있으며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일기가 자료관에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그의 세세한 사생활까지도 연구자에 의해 드러날 만큼 프랑스 역사의 대목마다 모든 사료가 자료관에 존재해 있다. ‘문화 대국’ 프랑스의 저력이 그곳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 TV프로를 통해 생생히 엿볼 수 있다.

눈을 우리 대전으로 돌려보자. 올해부터 대전방문의 해이고 대전이 도시역사가 100년이라는 차원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정작 대전의 지난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나 건물, 기록들은 점차 멸실돼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100년의 역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다른 도시에 비해 짧은 시간이나 대전만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 있고 대전이란 도시가 갖고 있는 스토리가 있다. 한해 3000만명이 해외로 나가 다른 나라와 세계 도시를 보고 오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전에 오게 하려면 타 도시가 갖고 있지 못한, 보는 재미를 보여 줘야 한다. 이는 결국 대전의 역사 속에서 또 그 역사와 함께 한 대전의 문화를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웃 도시 청주가 고려 시대 ‘직지심경’을 도시의 상징으로 만든 사례는 대전에게는 반면교사가 된다. 대전의 특징, 가령 3·8 또는 근대도시 등 이 도시가 지니고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전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와 흔적을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는 일본 역시 자료의 대국이요, 우리나라보다 우리나라에 관한 자료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역시 NARA(국립기록보관소)를 비롯한 여러 기록 관리기관들이 있다. 이를 보며 100년 역사의 도시 대전도 이제는 자료관 건립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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