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336 -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초들이 시공을 초월해 동경하는 세계는 강구연월이다. 그러나 유사 이래 강구연월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아득한 태고적 신화일 뿐, 최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은 강구연월의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민초들의 비원과 애절한 꿈이 서린 강구연월은 번화한 거리, 안개 낀 흐릿한 달이란 뜻으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말한다.

출전은 ‘열자’, ‘중니’에 나오는 ‘강구요’이다. 요임금은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나 됐는데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백성들이 자기를 지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측근과 관리와 백성들에게 물었으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복을 하고 번화한 큰 길거리에 나갔다.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하여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 아님이 없네/ 아무것도 모르고 걱정도 없이/ 임금님의 법을 따르고 있다네”라고 노래하는 것을 듣고 기뻐했다. 환궁해 舜을 불러 천하를 물려줬다.

지도층은 요임금처럼 민초들에게 강구연월의 세상을 만들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삶이 팍팍할수록 강구연월을 꿈꾸기 마련이다.

김천택은 “인간 번우(煩憂)한 일을 다 주어 후리치고/ 강구연월에 일없이 노닐면서/ 어즈버 성화천재에 이러구러 지내리라”라고 읊었고. ‘춘향전’의 농부는 “천리건곤 태평시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임금의 성덕”이라고 노래했다. 현실의 세계가 강구연월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염원한 것이다.

강구연월은 요임금 시절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이룰 수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소아병적인 자기합리화 무오류성의 자만을 버리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남과 북이, 여와 야가, 勞와 使가 상대를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고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면, 분열과 갈등을 해소해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태고적 강구연월을 21세기 한국에서 여는 길이다.

황금 개해인 2019년은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원하는 직장에 100% 취업해 실업자가 한 명도 없기를 기원한다. 반복되는 점거와 농성이 사라지고, 분열과 갈등이 봉합되고 해소돼 강구연월의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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