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식 효문화신문 명예기자

요즘처럼 불신 풍조가 팽배하고 비도덕적 사건들이 기하급수 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회적 환경을 보고 있다 보면, 양식있는 국민들의 걱정과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할 정도다. 마침 충청투데이(신문)에서는 효도문화 생활 장려를 위해 신문속에 신문으로 지면을 할례한다고 한다. 고마운 일로 생각 하면서 효문화 생활 확산을 독려하여 건전 사회상을 구현 하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 국민들이 효가 무었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바로 인식하는게 우선일 것 같아서 필자의 소견을 몇자 적는다. 효라는 글자의 뜻은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국어사전은 말하며, 한자의 ‘효(孝)’ 자는 젊은 아들이 늙은 어버이를 떠받드는 형상이며 삐침은 하늘의 명령이라는 설명도 있다. 영어 표기로는 완전치는 않으나 ‘피리얼(FILIAL)’을 쓸수 있는데 이 뜻 역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천륜적 이치라는 것이다. 헬라 원어에서는 ‘유세베오’는 ‘유세베스’라는 어원에서 유래한 말로 헌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헌신이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인간이 신(神)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히 부모는 신격(神格)에 가까운 존재라는 뜻이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가르친 공자의 효관을 보면 첫째- 부모가 가르치신 교훈은 부모 별세 후에도 3년 간은 고치지 말 것이며, 둘째- 자식이 부모 앞에 병들지 않는 것, 셋째- 형제끼리 우애하는 것, 넷째- 부모 슬하를 떠나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 다섯째- 부모 앞에서는 항상 온화한 얼굴빛을 갖는 것, 여섯째- 물질로 정성껏 봉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의 부모 은중경을 보면 첫재- 잉태의 은공, 둘째- 해산의 수고, 셋째- 자식 낳은 기쁨, 넷째- 자식을 위해서는 쓴 것 삼키고 단 것 뱃는다. 다섯째-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눕힘, 여섯재- 젖 먹여주심, 일곱째- 여행가면 걱정해주심. 여덟째- 키우신 수고, 아홉째- 끝까지 애지중지 하시는 부모의 은공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해 안될듯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돼보지 않고는 부모의 심정을 모른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효관을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주신 은공과 정성의 혜택이 너무큼을 감격한 나머지 실질적이며 직설적인 교훈으로 명령한다.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그래야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엡6장 1-2절)’고 가르치며, 만약에 부모를 경휼이 여기는 자나 훼방(학대)하는 자식은 저주의 대상이라고 설파한다. 그런 고로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먼저 효를 가르쳐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딤전5장4절)’고 했다.

이와 같은 전통적 효관을 보면서 효는 자식이 부모님의 은공을 바로 인식하고 그 은공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기위해 노력하는 생활인 것이다. 까마귀도 어미가 길러준 기간만큼 어미를 봉양한다고 하며, 비둘기는 어미보다 삼단계 낮은 가지에 않는 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는 조물주의 섭리에서 계시된 인륜도덕의 근본이며, 국가 질서의 황금률인 동시에 자식들의 사명감적 의무인 것이다. 이와같은 효의 진리는 천년 만년이가도 변할수 없는 만고 불변의 원칙이다. 다만 시대 변천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효를 생활에 적용하는 방법론에서는 다소 다를 수 있어도 그것은 극히 지엽적인 부분이어야 한다.

나무는 뿌리를 근본으로 해서 줄기 가지와 잎·꽃·열매로 이어진다. 뿌리는 조상이며 줄기는 부모에 비유된다. 줄기에 붙어있지 안는 가지에서 무슨 생명력 있는 잎이나 꽃, 열매를 기대하겠는가? 오늘날에 전개되는 효 확산 장려 운동은 인류 공영의 아름다운 풍습을 승화·확산하고자 하는 것임으로, 근본적 효 정신과 지엽적인 생활 사고를 인지해 효로 향하는 대장정 앞에 여명의 빛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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