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한 그루에 4500송이 포도가 열리는 포도나무 이야기를 접했다. 전북 고창의 한 농장에 있는 이 포도나무는 심은 지 14년 되었다. 일반 포도나무보다 100배 많은 양이 달리고 포도나무 줄기가 무려 40m나 되서 기네스북에도 실렸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이 거대한 생명의 나무가 탄생된 데는 농장대표의 남다른 손길과 땀방울이 있었다. 두부 비지와 대나무, 참나무 톱밥을 넣은 특제 비료를 줬으며,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철저한 토양 관리를 했다. 또 직접 만든 통풍 장치로 24시간 쾌적한 비닐하우스를 유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농부는 자신만의 농법으로 포도나무를 길렀다. 우선 함부로 가지를 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포도나무 가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1000㎡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뿌리를 튼튼하고 크게 가꾼 방법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대목이다. 농장대표는 '물주는 방법이 비법'이라 밝혔다. "한 1m 떨어져서 물을 준다. 또 시들거리면 더 멀리 물을 주고 해서, 이 나무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능력을 키웠다"며 "뿌리가 나와서 너희가 물을 먹어라, 내가 갖다 주지 않겠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시켰다"고 말했다.

갈무리하자면 자양분 공급, 좋은 환경 조성, 자연스런 성장의 허용, 자발적인 생명력의 확장 촉진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포도나무를 길러낸 비결의 전부다.

이 농장대표가 한 일은 옛날부터 많은 교육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몸과 마음에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제공하라, 좋은 교육적 환경을 조성하라, 성장을 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라, 스스로 가진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촉진하라 등등.

그런데 우리 교육의 실상은 어떤가. 생명이 가진 고유의 성장원리와 잠재력 발현에 얼마나 부합이 되는가. 학생의 행복한 성장, 자기 주도성, 생명력의 충일을 위해 교육시스템이 갖추어지고 사회적 인식은 심화되고 있는가.

얼마 전 화제 속에 끝을 맺은 '스카이 캐슬'이 보여주는 경쟁 만능, 명문대 간판주의, 성적 지상 등 도구화되고 파편화된 인간군상과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점점 인간적 특성을 획득해 가고 있다. 그런데 입시체제에 갇혀 공부하는 기계가 되기를 강요하는 힘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건 아닌가. 여전히 부정적인 진단과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 괴롭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아 우리 교육은 빛과 어둠의 교차점에 서있다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점점 더 크게 행복교육을 부르짖고, 성적보다는 성장을, 경쟁보다는 협력을, 학벌보다는 꿈을, 다른 무엇보다도 삶 자체를 지향하도록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푸르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이다.'는 괴테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이 가진 푸른 생명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지를 가장 우선에 두고 다시 세워졌으면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