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사람처럼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동물이 있을까? 포용과 관용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그 미덕이 얼마나 일상에서 제 역할 할지는 모를 일이다. 진료 현장에서 나는 이제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을 흔하게 본다. 백의민족이니, 단일 민족이니 하는 것을 강조하던 교육을 받던 나에게도 이미 우리나라는 수십 년 전의 그런 나라는 최소한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피부색과 말투가 다르더라도 환자라는 점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간혹 그저 차이가 있다고만 생각되지는 않는 때가 있다.

우열이 있을 것 같고, 호불호가 생겨난다. 차이는 이제 차별이 되어간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신생아 20명 중 한 명은 최소한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하는 현실과 인구학적 다양성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에 익숙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고 이야기 한다. 더 이상 도움을 주어야 할 상대가 아니고, 함께 가야 할 우리라고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위 기성세대를 관통하던 중요한 가치는 통일, 단합 그리고 일등정신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며 되도록 빨리 비참한 현실을 극복해야 했다. 간단명료하게 우리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정리해야 했다.

물론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정부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공식 발표하였고,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말들을 공공연히 들리고 있다. 이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뭐가 문제일까? 가지지 못한 것을 갖게 되었고,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커트라인을 넘어섰다면 행복은 당연히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 한구석에 하나를 가졌지만 여러 개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제 하나의 가치관만을 강조하는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하나의 가치관으로 이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 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성세대의 노력과 가치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릴 적에 가수가 된다고 했으면, 어른들에게 굳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소위 케이팝이 세상을 호령하고 즐거움을 주고 있지 않는가? 시대상에 맞는 현실 인식과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행복은 여러 곳에서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등만이 강조된다면 경기에 참여한 1등 이외의 모든 사람은 얼마나 초라해 지게 될까? 인생을 경기라고 비유하고 오직 시상대의 등수를 추구한다면, 극소수의 소위 성공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행복이라는 기준을 덧없이 높여 바라만 보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탈이 없는 평범한 일상, 건강한 가족들, 함께하는 저녁 그 정도면 만족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답가지를 여러 개로 늘려 놓을 수 있지 않을까? 1등은 아닌 우리 대부분도 살아야 하는 삶이 있고,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지금을 격변의 시대라고 한다. 격변의 시대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노톤의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하나의 정답만을 묻는 시대가 아니다. 비슷한 여러 가지를 찾으라 하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고르라고 얘기한다. 답을 모른다고, 백지 답안지를 내는 일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다양함이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최소한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이고, 중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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