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덕장. 연합뉴스
#. 국민생선 명태

증조할아버지가 고향에서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떠날 때 챙긴 짐 목록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지필묵에 옷가지, 짚신 여벌과 미숫가루, 얼마간의 여비와 마지막으로 북어를 짊어질 만큼 챙겨 괘나리 봇짐에 넣었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넘어 먼 서울 길을 가는데 북어는 무게도 별로 나가지 않고 영양 식품으로 요긴하게 쓰였다는 것이다. 조선조 말엽 매관매직으로 출중한 실력자라도 제대로 과거에서 선발되기 어려운 풍토였다지만 몇 번의 낙방을 겪은 증조부는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에서 착실하게 농사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먼 길 떠나기에 앞서 북어를 준비하여 결핍되기 쉬운 영양 보충에 활용했던 지혜가 읽힌다. 조선시대부터 명태, 북어는 이미 두루 유익한 국민생선의 반열에 올랐던 모양이다.

#. 명태를 포기하나

최근 캐나다산 명태가 항공편으로 수입되어 시판되었다고 한다. 종전 러시아와 일본산 명태에 의존했던 수요에 다소 숨통이 트인듯한데 매년 25만t씩 소비되던 명태의 소멸은 우선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류의 영향 탓이라지만 거기에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한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 술안주로 선호되었던 1년짜리 노가리까지 포획했으니 이즈음 명태 복원을 위해 국가 프로젝트로 4년간 48억 원을 투입하는 마당에 왜 그리 생각 없이 잡아댔는지 아쉬울 뿐이다. 일본산은 주로 생태로 들여와 지금도 일부 영업 중인 생태탕 식당으로, 러시아산은 동태로 소비된다는데 머리에서 꼬리까지 알과 내장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어느 한 부분 버릴 것 없는 명태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생선 하나에 붙는 이름이 수십 가지인 것만 봐도 명태의 명성을 알 수 있다. 생태, 동태, 북어, 춘태, 추태, 짝태, 황태, 흑태, 백태, 먹태, 간태, 코다리, 노가리, 그물태, 낚시태, 강태, 간태… 이제는 귀하디귀해서 금태라 부르기도 하는 이런 애정으로 진작 적정량 어획으로 개체 보호를 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야속하다. 어디 명태뿐일까. 숱한 어종이 지금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식탐과 욕심을 줄이고 생선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그려본다. 조업과 양식마저도 어렵다면 그 어종은 포기, 단념할 줄 아는 지혜와 함께.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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