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우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지난해 7월 일본 서남부지역을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해 오카야마현 구라시키 지역 일대가 침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상적이리만큼 잘 보존되어있던 구라시키 시내에 위치한 에도시대 전통가옥들은 무사한지 걱정이 엄습해왔다. 수년전 방문했던 남의 나라 일본의 작은 도시의 수해 소식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무엇보다 오하라 미술관 탓이었으리라.

오하라 미술관은 1930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미술관이다. 구라시키에서 방적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오하라 가문은 창업주 오하라 고시로를 시작으로 지역의 사회사업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아들 마고사부로(1880~1943)는 미술컬렉터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서양화가 코지마 토라지로(鹿島虎次郞)와 오랜 교분을 쌓으며 개인메세나 자격으로 화가의 프랑스 유학을 지원했다.

1920년대 초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에 매료된 코지마는 자신의 후원자 마고사부로에게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할 것을 권유한다. 마고사부로는 코지마가 유럽에 머무르던 4년간 왕성한 작품 수집활동을 대행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줬다. 그 결과 마네부터 르노와르, 피사로, 모네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물론 사실주의 계열의 주옥같은 작품들 100여점 수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재화가 코지마는 1929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마고사부로는 자신의 친구이자 예술동반자였던 코지마를 추모하기 위해 이듬해 오하라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이오니아 양식의 그리이스 신전 형상을 한 오하라미술관은 대를 이어 3대인 오하라 소이치로에 이르러 3000여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등의 동시대 미술 대가의 개인전을 연이어 개최하며 서구 현대미술을 일본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인구 47만의 소도시 쿠라시키에 연간 3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최근에는 저가항공사들이 인근 중소도시에 대거 취항하는 덕분에 중국, 한국 관광객들도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오하라미술관을 보러 온다. 관람객들은 미술관 소장품도 감상하지만 화가 코지마와 컬렉터 마고사부로의 향기로운 우정도 마음에 담아간다.

대전에는 아직 내세울만한 사립미술관이 없다. 그렇지만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로미술관 등 훌륭한 공립미술관들이 있다. 대전에도 오하라 가문과 같은 컬렉터들이 나올 수는 없을까? 자신의 이름을 딴 사립미술관을 직접 건립하지는 않아도 좋다. 대신 언젠가는 의식 있는 지역의 미술품 소장가들이 손수 소중하게 수집한 작품들을 공립미술관에 기증해 자신의 예술경험을 널리 알리고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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