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매시즌마다 출국자 기록경신을 이루는 인천국제공항. 연합뉴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한 생각과 결단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여행의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절 세계일주라는 꿈 같은 대장정을 실천에 옮긴 여행가 김찬삼(1926~2003) 교수가 남긴 글과 사진은 시대를 건너 여전히 빛난다,

그의 '세계일주 무전여행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꿈과 동경,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주었다. 캄보디아, 인도, 에티오피아, 네팔 같이 문명화가 덜 된 가난하고 생소했던 나라를 주로 찾아 거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백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장에 담아내어 행간을 더듬어 읽는 사람들을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30여 년간 총 160여 개국, 1000여 도시를 방문한 여정은 지금에 와서도 공전의 기록으로 꼽을 만하다. 게다가 변변한 항공편이나 여행정보, 안내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내디딘 발걸음에는 숱한 고비와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이 뒤따랐을 것이다.

어린 시절 탐독했던, 세로 조판에 빽빽한 활자로 인쇄된 김 교수의 여행기에는 사진이 별로 없었지만 그런 만큼 상상의 힘이 발휘되어 미답의 세계를 함께 좇게하는 흡인력은 컸다. 꽤 시간이 지난 후 컬러 사진을 곁들인 큼지막한 사이즈로 그의 여행기가 출간되었지만 초기에 활자매체로 접한 세계 각국의 풍물과 거기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는 사진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으로 독자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30년, 하루가 멀다 하고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여행안내서, 관광 가이드북은 별 어려움 없이 외국여행으로 이끌어준다. 너무 상세하고 친절한 나머지 여행자의 주관과 판단, 결심이 개입할 여지가 좁아지고 그저 안내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귀국길에 오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나름의 도전과 모험,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나'를 찾는 소중한 계기라면 이렇듯 자상하고 세밀한 안내서나 SNS에 떠도는 정보, 저마다 펼치는 주관적 체험담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김찬삼 교수가 1958년 세계여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의 그 설레임과 기대, 불안과 다부진 각오를 저마다 조금쯤은 간직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첩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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