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 16 내포 보부상, 역사에 뛰어들다] 
예산·덕산·면천·당진 등 관할… 정부 중요민속자료 30호 지정
경상·전라 상무사 일제 때 거의 소멸… 충남 내포는 명맥 지켜
역사 현장 곳곳에 참여… 나라서 벼슬 내려줘도 장사에만 전념

▲ 1960년대 장구와 대금 피리 가락에 따라 대회장으로 모이고 있는 보부상들. 예산군 내포문화사업소 제공
이승만, 서재필 등이 이끄는 독립협회는 1898년 3월 종로 네거리에서 만민공동회를 열고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승만의 연설이 막 뜨거워질 무렵 대회장은 갑자기 소란이 벌어졌다. 독립협회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친정부의 황국협회가 테러를 가해 집회를 방해한 것이다. 황국협회의 집회 방해는 계속되어 마침내 그해 11월 15일에는 고종임금이 직접 덕수궁 궁궐 앞에까지 나와 양측의 화해를 주선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황국협회 행동대원들의 상당수를 전국에서 모여든 보부상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보부상이란 이름 그대로 상품을 보따리에 쌓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는 소위 '봇짐' 상인들이다. 이런 상인들이 지역별로 집합을 이뤄 만든 조직이 '상무사'.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예덕상무사는 예산, 덕산, 면천, 당진 등을 관할했는데 지금도 정부의 중요민속자료 30호로 지정되어 예산군 덕산면에 많은 유품과 함께 보존되고 있다.

이밖에도 부여, 홍산, 임천, 정산, 한산을 관할하는 저산팔읍상무사와 원홍주육군상무사 등이 있었는데, 경상도, 전라도 지역의 상무사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 거의 소멸되었으나 충남 내포 지역의 상무사들은 여러 개의 군·현이 연합하여 조직력이 있었고 재정도 건실하여 끈기 있게 명맥을 지켜왔다.

특히 보부상들의 결사체인 상무사는 투표에 의해 '반수' 등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다 회원 하나하나에 권한과 책임이 엄격히 존경되는 등 그 시대 보기 힘든 민주주의식 조직이었다. 물건을 파는데도 짝퉁을 팔거나 속임수를 쓰면 강한 벌칙이 가해졌고 회원이 병들거나 죽게 되면 조직이 총동원되어 도와주는 의리 때문에 조직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포 지방이 보부상들에 의해 경제활동이 활발했는데 그것은 지리적으로 내륙 깊숙까지 바닷물길이 이어져 수산물 유통과 중국으로부터의 물물거래가 어느 지역보다 가능했기 때문이다.

▲ 1978년 예덕상무사 공문제 참석한 원로들. 예산군 내포문화사업소 제공
이런 경제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독일인 오페르트 일당이 예산 가야산의 대원군 아버지 묘를 도굴할 때 이들을 추적하는가 하면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싸움이 벌어진 강화도에 군량미를 운반해주고 정족산 전투에도 출전했다. 그러자 대원군은 매우 기뻐하며 보부상들을 보호 관리하는 보부청을 만들어 장남 이재면으로 하여금 사무를 관할케 할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1894년에는 동학군 진압에도 나섰는데 당시 보부상의 '반수' 지위에 있던 김병돈이 큰 공로를 세워 이를 기념하는 '김병돈 유공비'가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에 세워져 지금도 남아있다. 또 저산팔읍상무사에 속한 최돈욱 기념비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에 남아있는데 그만큼 동학군 진압에 보부상의 역할이 컸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물론 보부상들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기록은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 무기를 공급했다든지 정조 때 수원성 축성을 물질적으로 지원한 것 등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나라에서 벼슬을 내리려고 해도 거절하고 오로지 장사에만 전념했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이들에게 일정 상품의 독점권을 부여하고 일종의 신분증인 신표를 주었는데 광천 새우젓 독점 유통을 비롯해 모시, 중국에서 들여오는 광목, 소금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우리 보부상들을 때로는 '입헌군주제'와 같은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에서 우리 경제 유통에 큰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가가 어려울 땐 기꺼이 참여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벼슬을 거절하고.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 1987년 예덕상무사 덕산본부 상무사기와 청사초롱. 예산군 내포문화사업소 제공
▲ 청구요람에 나온 예산, 덕산, 면천, 당진. 예산군 내포문화사업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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