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이사

지난 화요일은 음력 정월 보름, 우리의 대표적이 세시 명절이 하나다.

음력 새해의 첫 보름날을 뜻하며,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요즘은 정월 대보름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부럼 깨기 행사이다. 호두·잣·밤·땅콩 같은 부럼을 깨면서 1년의 건강을 기원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도매시장에서는 정월 보름이면 중도매인 사장님들과 윷놀이 한판이 벌어지곤 한다. 가상현실 게임시대에 무슨 윷놀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참 묘하게 사람을 긴장시키고 너도 나도 소리를 지르면서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함박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개’다 ‘걸’이다 왁자지껄 떠들다보면 장사하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잠시라도 잊게 만든다. 앞선 말을 잡기 위해 이건 ‘걸’이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상대편 중도매인 사장님이 내 목소리 때문에 정월 보름 놀러왔던 조상님이 놀라서 도망가시겠다고 핀잔을 주신다. 이에 질세라 조상님이 놀라실 일이 송 사장 목소리뿐이겠냐며 저기 한겨울에 나와 있는 참외를 보고 오늘이 정월 대보름 겨울이 아니라 여름에 잘못 나온게 아닌가 갈등을 하실 거라는 다른 이의 말에 다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육탄전이 오갈 것 같았던 윷놀이 한판이 끝나고 정리를 하던 중에 시장에 놓여있는 참외에 시선이 갔다. 참외는 수박과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우리나라로 들어왔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재배가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음력 정월 보름이면 참외가 시장에 출하된다. 윷놀이 이후 퇴근하면서 유난히 참외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참외를 사다드렸다. 아이처럼 손뼉을 치시면서 어쩜 겨울에 나오는 참외가 이렇게 맛있냐며, 겨울에 참외를 먹는다는 게 예전에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고 신기해 하신다.

아 겨울 참외를 신기해 하시는 분이 우리 조상님만이 아니구나, 지금 이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도 겨울 참외가 신기하구나,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신기하다. 보지도 못하는 화폐(비트코인)가 등장하고 가격이 치솟고 폭락하고 다시 오르고, 놀이공원에서 타는 바이킹보다 VR바이킹이 더 무섭고, 겨울에 참외를 먹고, AI가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둔다. 또한 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발전해야 하는 과학기술이 인류를 앞서나갈지도 모른다는 막역한 공포심도 자리하고 있다. 세상이 변화가 신기하기만한 것이 아니라 무섭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부디 그때에도 윷놀이의 재미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홍시가 열리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는 노래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정월 보름에 노란 참외를 깎으시며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보석처럼 환하게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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