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

1940년, 그때 나이 만14세. 김복동 할머니는 집에 돌아온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8년이라는 세월을 기나긴 암흑 속에서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곱디고운 소녀는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줄로만 알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 참혹함을, 무서움을 누가 알까….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와서도 아픔과 고통 속에서 마음 편히 살지 못했다. 온 천하에 그 수모를 토로하는 것은 입술을 깨물어도 떨릴 정도로 더욱 쉽지 않았다. 일본의 사죄를 수없이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번번이 묵살했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그들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그토록 소원이었던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지난 1월 28일 93세의 나이로 나비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약 4년 전인 2015년 3월 1일, 할머니께서는 대전시청 앞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매주 열리는 수요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했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는 함께하지 못해 연신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방문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단순히 본인의 억울한 한을 풀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의 인권 유린과 전쟁의 참혹성을 알리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친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누구도 전쟁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를 피해자를 넘어선 ‘평화운동가’라 부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일제에 끝까지 항거했던 또 한명의 여성독립운동가가 떠오른다. 바로 유관순 열사다. 할머니가 끌려가기 20년 전인 1920년은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 순국한 해이다. 그때 불과 만17세로 가장 꽃다운 나이였다.

국민이라면 3·1운동 선각자인 유관순 열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요즘 시대라면 평범한 여고생이었을 유관순 열사는 일찍부터 조국애와 민족애를 품고 있었다. 밤낮으로 그린 태극기를 품에 안고 아우내 장터에서 펼친 독립운동은 우리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갖은 옥고를 치를 때도,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독립의 의지만은 잃지 않았다. 옥중에서조차 만세운동을 펼칠 정도로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지만, 끝내 밝은 빛을 볼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 속에서 가녀린 이 두 소녀는 일본에 의해 짓밟히며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들이 원했던 진정한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 잔다르크와 나이팅게일을 숭모했던 소녀는 일제에 항거하고 맞서 싸우다 꽃도 다 피우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만 했다. 또, 한 소녀는 고된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깊어진 주름이 가득하도록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생을 다할 때까지 당당히 맞섰다. 하지만 나라 없는 백성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조차 살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도 감수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점점 잊혀가고 있어 참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우리 후대가 역사를 잊지 않고 그 뜻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역사란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뿌리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가 모여 미래의 역사를 만든다. 영토와 사람을 앗아갈 수 있을지언정 역사는 훔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시민 모두가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함께 힘써야 한다. 누군가 잊으라, 잊으라 하면 더 오래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다 끝난 일이라고, 이미 합의가 다 끝났다 하면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라고 함께 외쳐야 한다. 우리 후대가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일제의 총칼에 쓰러진 애국지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다. 나라 없는 설움 속에 피맺힌 한을 가진 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이 일주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만큼은 모든 시민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두 명의 여성 운동가와 수많은 열사가 남긴 역사의 발자취를 느껴 보길 권하고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처럼, 시민 모두가 우리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