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대전용운중학교 교사

설날 저녁 모처럼만에 친척들이 다 모였다. 식사를 하면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조카에게 "초등학교 들어가는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유치원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다들 "우와!" 감탄을 하는데 옆에 있던 중학교 1학년 딸이 갑자기 "넌 이제 12년 동안 죽었다. 공부만 해야 돼. 나는 7년 버텼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들 박장대소 했지만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딸아이의 "버텼어" 라는 말에 속으로 놀랐다. 사실 딸아이는 평소 공부와 별로 친하지 않고 나도 그렇게 강요한 것 같지는 않아서 딸이 힘들어 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었다. 얼마 전 종영된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는 대한민국 최상위 0.1%에 속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입시 전쟁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어떤 교육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보고 변화의 필요성을 전달하고자 했을 텐데, 현실은 학원가 컨설팅 문의나 코디네이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주인공의 독서실형 책상이 잘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도심 외곽에 있다. 학업에 대한 아이들의 의지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로부터 '학생들의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인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또 우리 학교는 2014년부터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 2016년부터 자유학기제 운영, 2018년 자유학년제 확대 운영을 통해 모든 교과에서 학생 활동 중심의 참여형 수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교과데이, 밤샘독서캠프 등 다양한 교내 체험활동과 지역사회 협력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탐색 기회를 주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교과 수업 및 체험활동을 통해 의사소통, 협업, 정보처리, 대인관계, 갈등관리, 문제해결 등 다양한 역량을 길러나가고 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학생활동 중심 수업과 미래 역량 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활동이 학생들의 진로 진학과 연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 현실은 입시지옥이다. 굳이 서울 강남이나 드라마 속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우리 지역의 중심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방학동안 하루 12시간 이상 '○○스쿨, ○○캠프, ○○특강' 등의 사교육을 찾아다니며 학부모들은 학원가나 과외 선생을 찾는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든 아이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단순히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자신의 진로를 찾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역량을 길러 주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인생 로드맵을 부모나 코디가 짜주는 교육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인물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요."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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