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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찬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뇌신경센터 교수

설 명절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이따금씩 선산에 모신 부모님 생각이 나곤 한다. 한분이 살아 계실 때는 몰랐는데 두 분 다 돌아가신 후로는 마음이 헛헛한 게 바람막이도 없는 벌판에 혼자서 있는 느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음에는 순서도 없고 예외도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잘 죽어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료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많은 경우가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문턱 앞에서 허둥대며 끝까지 삶에 집착하다 속절없이 세상을 떠난다. 나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내 젊은 시절 갑자기 큰 병에 걸린 아버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병원에 모든 걸 맡겼다. 결국은 중환자실로 옮겨져 유언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돌아가시게 했다.

대부분 말기질환에 걸렸을 때 냉철한 준비로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다 필패 할 수밖에 없는 생명연장 시도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경우가 많다. 생명연장 기술이 발전할수록 의료인도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고 힘들어하며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생애 전체의료비 중 40%를 죽기 직전에 지출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부에서는 의료비 과다지출을 막기 위해 입원 기간 단축, 요양병원 전원이라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이로 인하여 짧은 입원기간, 긴 재활치료를 반복하는 입원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것이 의료현실이다.

이제부터는 잘 먹고 잘사는 '웰빙시대'에서 죽음을 잘 맞이하는 '웰다잉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이다. 특히 웰다이닝법으로 알려진 연명의료결정법이 작년 2월부터 시행되어, 무의미하게 목숨만 연명하기보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노인 인구만 3000만 명인 초 고령화 사회이며 곧 우리나라도 2026년경이면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든다. 지금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2세에 달하는 장수 국가 중 하나이다. 인류의 꿈인 장수를 이루어가고 있지만 준비 없는 장수는 축복 이전의 재앙이라는 역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인간으로서 죽는 순간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생을 마감해야 한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외면하는 닫힌 정서와 문화는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에서 삶을 바라보면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혜안을 얻는 예는 주변에 무수히 많다. 죽음은 삶의 완결이며 마지막 성장의 기회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사유가 줄어들수록 삶이 물질위주로 천박해져 감을 부인할 수 없다.

죽음을 공포나 슬픔으로 여기고 논의조차 거부하며 나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 막연한 기대감등으로 인해 막상 죽음이 닥치면 우왕좌왕하다가 임종 대부분을 의료인의 결정에 맡기고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가 주관하며 정작 죽은 당사자와 가족은 장례에서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군으로서의 역할밖에 못하는 현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죽음을 인식할 때 죽음을 통해 삶을 볼 수 있으며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비로소 생존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고 예일대학교 철학과 셜리 케이건 교수는 말했다. '웰다잉'을 위하여 생전에 맑은 정신으로 유언에 대해 고민해보고 사전의료의향서와 더 나아가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해 미리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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