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충북무심수필문학회 사무처장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엔 한 울타리에 여러 가족이 올망졸망 세 들어 살았다. 없이 살았던 시절이었지만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던 인정이 넘치는 이웃이었다. 제사가 있는 날에는 밤늦은 시간에도 제삿밥을 나눠 먹고, 서로 만나면 밥을 먹었는지 여부가 인사였다. 아마 수량이 격을 높였던 시대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 지면서 좋은 품질을 중히 여기는 질(質)의 시대로 넘어 이제는 종합적인 안목을 중요시하는 격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격(格)은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환경에 맞는 일정한 방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밥을 지으면 아버지의 밥을 가장 먼저 푸셔서 아랫목에 묻었다. 반찬도 아버지의 몫을 챙겨두고 남은 것이 우리들 차지가 되기 마련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가장 우선으로 한 것은 아마도 집안 어른인 아버지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격(格)]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격(格)이 있듯이 물건에는 품격이 있고, 서비스에도 질의 격이 있을 터이다. 우리는 어떤 격을 갖추고 살아야 할까. 모임에 나가 보면 행동이나 말 그리고 옷매무새까지 모든 것이 제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제격'인 사람이 있는 반면, 어느 구석 하나 어울리는 곳이 없는 사람이 있다.

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고 부여되는 것이다. 과거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을 돈으로 사고 선비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었다. 요즈음도 성형외과에서 몸을 리모델링하려고 북적인다. 인격과 품격은 갖추지 않고 외모만 변화시킨 그들에게 어디 기품이 우러나던가. 그것은 포장된 격이 아닐까. 마치 갓을 쓰고 양복을 입은 모양새와 다를 바가 없음이다.

사진작가로부터 전시회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뜻밖이었다. 전시장소가 종합병원이었다. 병원 한 공간에 미술관의 격을 옮겨 놓았다. 온종일 병실을 지키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심리를 고려한 곳이었다.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환자의 전인적인 면을 살피기 위해 배려된 공이라 더욱 격을 느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파주 출판 마을을 찾는다. 서점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개 목소리를 낮추고 단어도 가려 쓰며 격(格)을 갖추려 노력한다. 서점의 격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기존의 서점 구분을 넘어서 고객의 체험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는 지적 자극에, 자신이 고른 서적을 읽으며 편안한 자리에서 즐기다 보면 스스로 격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기도 하고, 생필품을 살 수 있는 편리함까지 누리다보면 그들이 제공하는 서점의 가치와 공간의 격에 빠진다.

하지만 비싸다고 격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주말부부라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비록 혼자 먹는 밥이지만 가끔은 자신을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식탁을 차린다. 소박한 반찬을 예쁜 그릇에 담고, 머플러를 러그로 삼아 숟가락도 가지런히 놓아 본다. 비록 혼밥이고 외식에 비하면 초라한 밥상이지만 결코 식탁의 격이 떨어지지 않는 식사가 된다,

어떤 격을 갖추고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본다. 나이 듦에 따라 격을 갖추면 격조 있는 사람이 아닌가. 과거 동양 교육에서 사람의 격 중에서 최고의 격은 언행일치자(言行一致子), 무언실행자(無言實行子)로 사는 것이라 했다. 나이 듦의 격은 평생 자신을 숙성시키고 담금질시킨 만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이다. 내 사정에 맞게 나답게 살며 언행일치, 무언실행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격조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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