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의 저팔계 잡상.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경남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의 저팔계 잡상.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십이지신도 중 해신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십이지신도 중 해신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삶은 돼지를 담는 제례용 제기. 돼지 모양 다리가 부착돼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삶은 돼지를 담는 제례용 제기. 돼지 모양 다리가 부착돼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중국 윈난성의 장례식용 돼지탈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중국 윈난성의 장례식용 돼지탈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황금돼지해', 재복과 번창 기대해볼까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올해는 '돼지해'다. 그것도 재복(財福)을 상징하는 돼지에 금이 덧칠된 '황금돼지해'. 오는 설날과 함께 시작되는 돼지해가 왠지 휘황한 금색으로 빛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돼지의 모습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돼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봤다.

돼지는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열두 번째, 즉 마지막 동물이다.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9∼11시로, 돼지가 꿀잠을 자는 시간이다. 달로는 음력 10월, 방향으로는 북북서(北北西)에 해당한다. 즉 돼지는 북북서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하는 방위신이다.

돼지해는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 을해(乙亥), 정해(丁亥) 순으로 12년마다 돌아온다. 기해년은 천간의 기(己)와 지지의 해(亥)가 만난 해이다. 10개의 천간 중 2개씩은 청, 적, 황, 백, 흑과 연결되는데 무(戊)·기(己)는 황색과 이어진다. 기해년을 황금돼지해라고 하는 이유다. 황금돼지띠에 대한 민속학적 근거는 없다.

◇ 신통력을 지닌 영물

돼지는 기원전 6천 년경 동남아시아에 살던 멧돼지가 가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돼지가 서식한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유적지인 평남 검은모루동굴, 덕천 승리산, 충북 청원 두루봉 유적 등에서는 멧돼지의 뼈와 화석이 출토됐다. 멧돼지가 가축화한 시기는 북한 웅기 서포항과 무산 점의 구석 등에서 개와 함께 돼지 뼈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 때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주호(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를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어 약 2천년 전 이미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부여 조에 보면 부여의 행정구역 4곳을 다스리던 관직의 명칭으로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가 나온다. 말, 소, 돼지, 개는 모두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자 가축이다. 이런 명칭은 통솔하는 부족의 토템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돼지란 이름은 '꿀꿀'이 아닌 '도도', '돌돌' 등 돼지 울음소리에서 유래했는데 고구려 때는 '도시'로 불렀다가 고려 때는 '돗', 조선 시대에는 '돋', '돝'이라 했다. 이 이름에 동물의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더해져 '도아지', '도야지'로 부르던 것이 오늘날 '돼지'가 됐다. 즉 돼지는 원래 새끼돼지를 지칭한 것이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돼지를 '도야지'라고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 고려사 등 역사서 속에서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고, 왕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는 등 신의 뜻이나 의지를 전달하는 영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편에는 돼지가 수도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21년 봄 3월에 하늘에 제사 지낼 돼지가 달아났으므로 왕이 희생(犧牲)을 담당하고 있는 설지(薛支)에게 명하여 이를 찾게 하였다. 국내(國內) 위나암(尉那巖)에 이르러 찾아내어 국내인의 집에 가두어두고 이를 기르게 하고 돌아와 왕을 뵙고 아뢰기를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 위나암에 이르렀는데, 그 산수가 깊고 험준하며 땅이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고, 또 순록, 사슴, 물고기, 자라가 많이 생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께서 만약 도읍을 옮기시면 단지 백성의 이익이 무궁할 뿐만 아니라 전쟁의 걱정도 면할 만합니다" 하였다'고 적고 있다. 유리왕은 이듬해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고려사'를 보면 돼지가 집터를 안내한다. 고려 태조의 조부 작제건이 용왕의 딸과 결혼해 용왕에게서 돼지 한 마리를 얻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자 돼지에게 "만일 이곳이 살 곳이 못 된다면 장차 네가 가는 데로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이튿날 아침 돼지가 송악산 남쪽 기슭에 가서 누웠다. 돼지가 안내한 곳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고 용녀는 아들 용건을 낳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용건은 훗날 왕건을 낳았다. 이 집터는 현재 북한 개성 송악산에 있는 만월대 자리로 알려져 있다.

◇ 재복, 풍요, 비옥함 상징

돼지는 재복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장사하는 집에서는 문설주 위에 돼지 그림을 붙였고, 음력 정월 상해일(上亥日, 첫 해일)에 장사를 시작하면 좋다는 미신적인 관습도 있다. 돼지를 끌고 오는 꿈을 꾸면 복권을 사거나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으는 것도 모두 돼지가 번창을 가져온다는 속신(俗信) 때문이다.

돼지가 재복을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영국 식민지 시절 돼지를 풀어놓고 키우던 곳이었다. 돼지 떼의 난입을 막기 위해 맨해튼 남부에 벽(Wall)을 세웠는데 이후 벽을 따라 도로가 생기며 자연스럽게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돼지는 풍요와 비옥함의 상징으로서 신에게 바쳐졌다.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고구려 시대부터 제전(祭典)의 희생으로 쓰였다. 고구려 때는 제물로 바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 해서 관리를 두어 길렀고, 조선 시대에는 조상에 드리는 제사 제물로 멧돼지를 사용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제사편에 보면 3월 3일에 악랑 둔덕에 모여 멧돼지와 사슴을 잡아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있다. 오늘날에도 개업, 개봉 등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고사를 지내며 돼지머리를 제물로 사용한다. 사람들은 돼지 입에 지폐를 물리는 행위를 통해 부(富)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1970년대 이발소에 가면 흔히 어미돼지가 많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것은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듯이 재물이 빨리 불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 더럽고 탐욕스러운 동물일까

돼지는 한편으론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미련한 동물로 여겨진다.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비롯해 뭐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정도로 먹성이 엄청나고, 배설물로 축축하고 냄새나는 비좁은 돈사에서 사육되는 모습이 각인된 탓이 크다. 또 포동포동 살이 오른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태나 우둔으로 연결된다.

돼지의 탐욕을 엿볼 수 있는 신라 시대 '금돼지 설화'가 있다. 어느 고을에 금돼지가 나타나 여자들을 납치해갔는데 원님 부인까지 끌고 갔다. 군졸을 풀어 뒤져보니 동굴 속에서 금돼지가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 원님은 이 돼지가 사슴 가죽을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슴 가죽 주머니로 위협해 여자들을 구했다. 얼마 후 원님 부인의 배가 불러 아기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신라의 대학자인 최치원이었다고 한다.

돼지와 관련한 속담을 보면 좋은 것이 별로 없다. '돼지 멱 따는 소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욕심이 돼지 같다', '돼지는 구정물에 살찐다', '돼지 발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다', ' 칠푼짜리 돼지 꼬리 같다'처럼 돼지에 대한 선입견이나 겉모습에서 유래한 속담이 많다.

특히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로 취급해 먹지 않는다. 고대에 유대인들은 '돼지'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고 '그 짐승'이나 '그것'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으면 문둥병에 걸린다고도 여겼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는 돼지에 대한 혐오가 잘 나타나 있다. 하느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돼지는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쪽발이기는 하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그런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들의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돼지는 신약성서에도 등장한다. 예수를 만난 마귀들은 자기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고 대신 근방에 놓아 기르던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예수가 허락하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고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내리닫다 물에 빠져 죽고 만다.

하지만 돼지의 조상인 멧돼지의 습성을 보면 더러움과 미련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멧돼지는 양지바른 남향의 조용한 활엽수림에 주둥이로 땅을 파고 낙엽을 깔아 잠자리를 만든다. 서식지에는 반드시 진흙목욕탕이 있어 그곳에서 목욕을 자주 한다. 돈사에서도 배설 장소를 따로 만들어 주면 그곳에서만 배설하고, 누울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또 멧돼지는 산등성이를 지날 때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곳을 끼고 갈 정도로 지혜롭다.

◇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양식

돼지는 대부분 식용을 위해 사육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1인당 육류소비량은 51.3㎏이었고, 돼지고기(24.4㎏), 닭고기(15.4㎏), 쇠고기(11.6㎏) 순으로 많이 소비했다. 섭취하는 고기 절반이 돼지고기란 이야기다. 2017년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3명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돼지고기를 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구이용 부위로는 61.3%가 삼겹살을 1위로 꼽았다. 먹거리가 많이 다양해졌지만 삼겹살은 여전히 회식이나 가족 모임의 단골 메뉴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산 이베리코 흑돼지가 인기를 끌자 가짜 제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돼지고기는 고구려 때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기 음식인 맥적(貊炙)은 멧돼지나 돼지고기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악 3호 고분의 벽화에는 부엌 옆에 고기를 꼬챙이에 걸어둔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645년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투 때 안시성에서 닭과 돼지의 소리가 많이 들렸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돼지를 많이 사육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돼지는 죽은 자를 위한 양식으로도 쓰였다. 고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옥이나 대리석으로 돼지 모양을 만들어 죽은 사람의 손에 쥐여줬는데 이는 내세에 먹을 양식을 상징한다.

◇ 역사 속 돼지의 해

돼지의 해에는 국내외적으로 대형 사고와 자연재해가 잦았다. 국내에서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 폭발, 1983년 대한항공 KAL기 피격,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등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옴 진리교 가스 테러가 있었고, 1923년에는 간토 대지진이 발생해 총 40만여 명이 사망·실종됐고, 이때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됐다.

남북 관계와 관련한 사건도 있었다. 2007년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1983년에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138일간 진행돼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고, 북한군 비행사 이웅평이 귀순했으며, 미얀마(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테러가 발생해 부총리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다. 1971년에는 북파 부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자폭한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적인 변화나 의미 있는 일도 있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1995년에는 노태우·전두환이 구속 수감됐으며, 처음으로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1971년에는 박정희가 제7대 대통령에 당선돼 이듬해 장기집권을 위한 초헌법적 비상조치인 10월 유신의 발판을 마련했다.

1443년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발명품인 훈민정음이 창제됐고, 1899년에는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노량진∼인천 구간이 개통됐다. 1935년 우리나라 최초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단성사에서 개봉했고,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발표했다. 1995년에는 케이블TV 본방송이 시작됐다.

세계적으로는 1863년 영국 런던에 세계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했고,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했으며, 1851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창간했다. 1911년에는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했다. 2007년에는 애플 아이폰이 출시됐다.

올해는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단연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다. 이 회담은 한반도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4월 3일에는 국회의원·기초의원 재보궐 선거가 실시된다. 6월 7일∼7월 7일에는 프랑스에서 FA 여자월드컵이, 10월 4∼10일에는 서울에서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린다.

돼지띠 해 관련 전시회도 진행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돼지의 민속, 생활사적 의미와 상징을 소개하는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행복한 돼지'를 오는 3월 1일까지 연다. 이 전시에서는 '해신 비갈라대장'을 비롯해 '(저팔계)잡상', '십이지 번(돼지)', '시정'(豕鼎), '돼지저금통' 등 돼지 관련 유물과 사진, 동영상 약 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주역사박물관은 오는 24일까지 돼지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기해년 돼지띠 특별전 '돼지몽'을 개최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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