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충남도의 첫 美軍 도지사
대전 관청가 황량함 그 자체, 카프 부임…좌우익 충돌 규제
친일 박재홍 전 지사로 고심…인수인계후 도청 현관 배웅도
카프, 정부수립까지 치안 유지
▲ 1945년 10월 7일, 마침내 미군이 충남도청을 접수하고 육군 대령 카프가 미 군정 하의 충남도지사로 부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구한말 충남도청사, 1932년 충남도청사 상량식, 1966년 충남도청사 전경. 충남도 제공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음에도 충남도청 소재지 大田에 미군이 진주한 것은 해방 후 52일이나 지난 10월 7일이었다.

미군이 충남도청을 접수하기까지 거의 두 달은 여전히 일본의 조선총독부에서 임명한 박재홍이라는 한국인 도지사가 행정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름만 도지사였지 패망한 일제의 하수인이었기에 별 힘을 쓰진 못했다. 그러자 대전 인근의 불법 산림벌채가 극심했고 엄격히 통제되던 소의 도축도 날로 성행했다. 그렇게 사회가 무질서 속에 빠져들었다.

▲ 1945년 10월 7일, 마침내 미군이 충남도청을 접수하고 육군 대령 카프가 미 군정 하의 충남도지사로 부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구한말 충남도청사, 1932년 충남도청사 상량식, 1966년 충남도청사 전경. 충남도 제공

그나마 충남도청의 중심을 이끌던 사람은 민주당 장면 정권 때 국방부 장관까지 했던 현석호 광공부장이었다. 그는 해방이 되자 도청광장에 한국인 직원들을 모이게 하고 정황설명을 하는가 하면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정말 이 무렵 대전의 관청 가는 황량함 그대로였다. 도청 직제 중 가장 중요한 지방 과장 아까야마라는 사람이 자살하고, 대전지방검찰청 일인 검사장까지 집무실에서 자살하자 일본인 관리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런 데다 대전의 일본 거류민들이 매일 대전역을 통해 부산항으로 떠나는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가운데 그해 10월 7일, 마침내 미군이 충남도청을 접수하고 육군 대령 카프가 미 군정 하의 충남도지사로 부임했다. 카프 대령이 충남도지사가 되면서 처음으로 부닥친 문제는 대전에 있던 지방신문사를 공산주의 세력이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대전에는 중선일보(中鮮日報)와 동방신문(東邦新聞) 두 개가 있었는데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자들은 신문사 접수를 위해 갖은 책동을 다 벌였다. 심지어 30여 명의 좌익세력이 신문사 간부 집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고 한번은 신문사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카프 대령은 처음에는 미국식으로 이런 언론사 분쟁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가 점차 폭력화되자 신문사에 헌병(MP)을 배치하는 등 테러방지에 적극 개입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을 비롯 충남도내 각급 학교에서 벌어지는 좌우익 충돌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 1945년 10월 7일, 마침내 미군이 충남도청을 접수하고 육군 대령 카프가 미 군정 하의 충남도지사로 부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구한말 충남도청사, 1932년 충남도청사 상량식, 1966년 충남도청사 전경. 충남도 제공

또 하나 문제는 일제 식민지하의 마지막 충남도지사 박재홍의 신변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박재홍 지사는 비록 한국인이었지만 신분은 일본 고위관리였기 때문에 체포하여 사법적 조사와 처벌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군 도지사 카프 대령은 '박 지사가 도지사로 재임한 기간이 50여 일밖에 되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모든 것을 불문에 부쳤다. 오히려 충남 도정 사무인수인계 서류에 사인한 다음 박재홍을 도청 현관까지 배웅하며 따뜻하게 보내 주었다.

카프 대령이 이처럼 그를 따뜻하게 보내 준 데는 그 나름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해방되자 대전을 비롯 도내 곳곳에서 식량부족으로 큰 곤경에 빠져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박재홍 지사가 당시 대전중학교에 주둔 중인 조선군 사령부를 찾아가 쌀 300가마를 차용 형식으로 가져오는 등 식량난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점이 참작의 사유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어쨌든 충남도정사에 처음 등장하는 미군 도지사 카프 대령은 우리 정부 수립까지 도내 치안유지에 전력했다. 그렇게 해방 후 우리 사회는 좌우충돌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 1960년대 상공에서 바라본 충남도청사 전경. 충남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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