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억수 시인

도깨비는 상상의 존재다.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의 놀이판은 인간이 못다 한 소망과 참고 누를 수밖에 없는 욕망을 도깨비가 대신 채워주고 풀어주고 있다. 도깨비들은 때로는 성난 모습으로 해학적이고 유쾌한 모습으로 서로 속고 속이는 괴짜의 모습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다. 도깨비는 변화무쌍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체가 될 수도 있고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큰 도깨비가 신년회를 소집했다. 문학을 공통분모로 우리는 가끔 아무런 계획 없이 도깨비놀음을 한다. 각자의 생활에서 억눌린 욕구가 폭발하면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돌아다닌다. 우리 도깨비는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당일 마음 가는 대로다. 누구든지 예고 없이 소집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동참한다. 그렇지만 도깨비불을 일으키려면 세 명이 돼야 한다. 마음 맞는 우리는 도깨비 같다는 말에 도깨비 모임이 됐다. 도깨비 신년회에 도깨비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신년회는 정해진 목적지 없이 차량으로 무조건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향하고 바다가 나올 때까지 가보자는 의견이 모여 청주에서 출발했다.

청주 가로수 길을 지나 조치원에서 좌측으로 달리니 세종이다. 그리고 공주를 지나고 논산을 거쳐 군산이다. 도깨비들은 고군산군도로 향했다. 얼마 전에는 선유도를 가려면 군산에서 뱃길로만 가야했다. 그러나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와 고군산군도 연륙교가 개통돼 차량 길이 열렸다.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신시도를 둘러보고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에 도착했다. 잠시 선유도의 풍광을 바라보며 신선 걸음을 해보았다. 매서운 바람에 신선은커녕 봉두난발 도깨비가 됐다. 서로의 모습에서 터진 유쾌한 웃음이 선유도의 맑은 하늘에 신선을 그려놓는다. 푸른 바다를 안은 장자도의 할매 바위와 횡경도의 할애비 바위의 전설을 뒤로하고 무당이 춤추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무녀도를 둘러보았다. 무녀도 겨울바람에 밀려오는 파도는 김동리 소설가의 작품 ‘무녀도’의 무당 모화의 삶을 몰고 왔다. 도깨비들은 김동리 문학세계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고군산군도의 시퍼런 바닷바람을 가슴에 담았다.

삶이란 도깨비 장난 같아서 어느 때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도 있고 도깨비에 홀린 것 같아 무슨 영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도깨비는 악독하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밉지 않은 심술을 부릴 뿐이다. 우리 도깨비도 서로가 서로에게 변덕스럽고 장난스러운 심술쟁이 모습의 도깨비이다. 다른 사람은 우리 도깨비놀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도깨비놀음은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큰 도깨비는 큰 도깨비대로 작은 도깨비는 작은 도깨비대로 서로서로 이해하고 개성과 약점까지도 감싸며 배려한다. 그래서 도깨비들은 함께 불놀이할 수 있다. 서로에게 이런저런 고민도 털어놓고 상처받고 힘들었던 일상을 위로받으며 보낸 의미 있는 도깨비 신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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